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1인 1표’를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저자는 반기를 든다. 21세기 들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지식을 갖춘 유권자와 지식이 부족한 유권자 모두 민주주의에 중요하다는 주장에 드는 비용은 너무 심각해 약간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갖춘 유권자에게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대 민주주의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인지 의문이 적지 않다는 게 저자가 ‘10% 적은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근본 배경이다.
그러니까 일정 수준 이상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국제간 무역 같은 것이 오히려 평화의 개연성을 높인다. 민주주의가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에 미친 효과는 아예 없거나 혹은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는 도구로 세율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세수가 줄어드는 래퍼 곡선을 이용한다. 상당한 수준까지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은 민주주의의 래퍼곡선에서 지복점(至福點, 욕망 충족 상태)을 넘어서는 위치에 놓여있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의 래퍼 곡선에서 지나치게 민주주의가 많은 쪽으로 치우쳐 있다”며 “이런 국가들에서 유권자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등 민주주의를 10% 정도 줄임으로써 더 높은 경제 성장, 더 효율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방법은 시민들로부터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조금 ‘빼앗는’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지금보다 더 긴 정치인들의 임기 보장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인들은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고 인기가 없는 정책에선 발을 빼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
아르헨티나, 프랑스, 미국의 국회의원들 모두 임기 초기에 비교적 중요한 일을 더 많이 처리했으며 유럽연합의 국가들이 선거를 목전에 두면 유럽연합 정부가 협약을 제정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처럼 유권자들을 의식할 때 정치 엘리트들은 효과적이지만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법안을 추진하지 못했고 경제적 성장을 가져오는 정책을 펼치는 데 주저했다.
저자는 유권자들의 근시안적인 사고가 이같이 대중에게 영합하는 정치를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를 축소해야 하는 이유로 저자가 든 또 하나의 사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정치에서 ‘독립적’일수록 일반적으로 더 나은 결과가 나왔다. 중앙은행이 민주주의와 거리를 둘수록 인플레이션율이 낮게 유지되고 금융위기의 위험이 줄어들었다.
판사와 사법기관 역시 유권자로부터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경향이 있었다. 즉 조금 덜 민주적이면서 조금 더 과두정치적인 사법부가 더 좋은 판결을 내린다는 게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책은 또 유권자의 역량이 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도 부각한다.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서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일군 싱가포르 사례가 그것.
10%보다 훨씬 못 미치는 민주주의를 지닌 싱가포르는 50년 전 비슷한 인구를 가진 덴마크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현재 1인당 소득이 80% 정도 높다. 리콴유와 인민행동당은 모든 유권자의 자유로운 참여를 제한하고 전통적인 엘리트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한 핵심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확보했다.
국가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약간 떨어뜨리는 것이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독재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강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10% 적은 민주주의로 더 효율적인 국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0% 적은 민주주의=가렛 존스 지음. 임상훈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372쪽/1만98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