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진행자인 트레버 노아는 태어나면서 ‘범죄’의 상징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체제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 간 성관계는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 범죄 행위였다. 트레버는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범죄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됐다.
어린 시절 트레버는 가난한 생활과 계부의 학대로 점철됐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론 매를 들고, 때론 긍정의 힘으로 아들을 지도한 어머니 덕분에 노아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찾았다.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는 대신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 주기로 한 것이다. 코미디언으로서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을 때, 트레버는 한 통의 연락을 받는다. 계부가 엄마의 머리에 총을 쐈다는 것이다.
총알은 어머니의 머리를 관통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광대뼈만 박살내며 비켜갔다. 다음 날 아침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어머니는 눈물범벅이 된 트레버를 위로했다. “아가, 울지 마. 이제는 네가 공식적으로 가족 중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되었잖니.”
그리고 덧붙였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트레버의 인생은 시작부터 엉켰다. 태어날 때부터 ‘범죄’ 딱지를 뗐고 불법 CD를 제작해 팔며 장물도 거래했다. 계부는 학대를 일삼았고 결국 어머니를 잃을 뻔했다.
책은 트레버 노아라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의 참상과 폭력, 학대의 민낯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절망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법도 공유한다. 누구의 삶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스며있는 아픔과 웃음의 이중주에서 트레버가 유일하게 다른 이와 달랐던 점은 웃음이 언제나 마지막 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태어난 게 범죄=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부키 펴냄. 424쪽/1만68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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