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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교사 참수’ 열흘만에 佛, 아랍에 만평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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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에브도, 최신호 만평서 터키 대통령 빗대 무함마드 조롱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게재했다가 2015년 편집장을 비롯해 12명이 숨지는 테러를 당했던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또다시 도발적인 만평을 실었다. 프랑스와 중동 이슬람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한 시기에 ‘이슬람의 정치 리더’를 자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자극적으로 조롱하는 만평을 표지에 게재한 것이다. 지난 16일 샤를리 에브도의 과거 만평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준 프랑스 교사가 18세 무슬림 소년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논란이 더 커지는 계기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에선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가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일보

도발 vs 도발 -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최신 호 표지에 실린 만평(왼쪽 사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상징하는 인물이 여성의 부르카를 걷어 올리며 “우, 선지자(무함마드)”라고 말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란의 강경 성향 신문 바타네 엠루즈 27일 자 1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악마로 형상화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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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는 28일(현지 시각) 발간한 최신호의 표지에 ‘사생활에서 그는 진짜 웃긴다’는 제목의 만평을 실어 에르도안을 조롱했다. 전날 온라인에 미리 공개된 이 만평을 보면, 에르도안은 배꼽을 드러낸 채 흰색 팬티를 입고 소파에 앉아 있다. 오른손으로는 맥주를 들고 있고, 왼손으로는 술 시중을 드는 여성의 부르카(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옷)를 걷어올리고 있다. 이 여성은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엉덩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에르도안은 “우, 선지자(무함마드)”라는 말을 한다. 에르도안이 이슬람교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를 자처하지만 사생활은 지저분하다며 비꼬는 내용이다.

교사 살해 사건 이후 이슬람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 에르도안이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며 독설을 내뿜자 샤를리 에브도가 공격을 취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터키 대통령실의 파흐레틴 알툰 공보국장은 트위터에 “분명한 외국인 혐오, 이슬람 혐오”라고 했다.

이 만평을 샤를리 에브도가 트위터에 공개한 지 12시간 만에 9000여 차례 리트윗(재전송)되는 등 반응은 뜨겁다. 이 만평을 다룬 뉴스 채널 BFM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만 댓글이 7000개 넘게 달렸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자극적인 도발” “3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어떤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는 지켜야 한다” “에르도안은 독재자"란 반응이 엇갈렸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리는 것 자체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유독 프랑스가 이 같은 이슬람의 관습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영방송 ‘프랑스24’는 “노골적인 만평을 즐기는 것은 대혁명 시기 이전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이슬람 역풍’을 맞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교사 살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파리 외곽의 이슬람 사원을 폐쇄하고, 일부 이슬람 단체의 해산을 결정해 중동 국가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27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는 4만여명이 ‘반(反)프랑스 시위’를 벌였다. 마크롱의 사진을 짓밟거나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파키스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터키·이라크·쿠웨이트·요르단 등에서 지난주부터 벌어지는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등이 26일 이슬람 국가들의 위협에 맞서 프랑스에 연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슬람 국가들을 더 똘똘 뭉치게 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코로나 사태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마크롱이 이슬람을 적으로 삼아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도 가한다. 이란 국영TV는 “프랑스가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테러에 대한 두려움도 엄습하고 있다. 일부 이슬람 해커들은 프랑스 웹사이트들을 공격하고 “무함마드를 건드린 이들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27일 오후 파리 시내 개선문에선 폭발물로 의심되는 상자가 발견됐다. 폭발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경찰이 개선문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2시간 넘게 인근 차량 통행을 막으면서 시내가 어수선했다. 같은 시각 에펠탑 근처에서도 탄약이 담긴 가방이 발견돼 경찰이 일대를 통제하기도 했다. 프랑스 외교부는 터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이라크 등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안전에 유의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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