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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 국내 안주하던 삼성에 경고 [이건희 별세 세상을 바꾼 경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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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된 프랑크푸르트 선언
외면받는 제품에 "삼성이름 빼라"
2개월간 350시간 신경영 대화
인재 제일주의 경영 실현
연공서열 없애고 능력급제 실시
재난구호·스포츠외교로 구체화


파이낸셜뉴스

호암과 함께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이 지난 1980년 삼성그룹 본관에서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와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인재 제일주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외형적 성장 외에도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고,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양보다 질…'신경영 선언'


이 회장은 지난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외형적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을 통해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 혁신을 추진했다. 그는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했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내용으로 유명한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돼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당시 이 회장의 진단이었다.

이때까지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다.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했다. 이처럼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던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라고 지적하며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꾸짖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주요 임원들은 프랑크푸르트로 긴급 소집됐다. 이때부터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그해 6월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다.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이렇게 2개월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삼성의 신경영 철학은 세계화의 현장에서 제시되고 확산됐다. 당시 이 회장은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800여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들과 나눈 대화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 용지 8500장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인재 중심 '학력제한 폐지'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연공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또 인재 육성과 함께 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 기술인력을 중용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기술적 저변을 확대했다. 사업에선 반도체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고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

이 회장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키고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구조대를 조직, 국내외 재난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도록 했다.

이는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도록 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사회의 재난현장에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외교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97년부터 올림픽 스폰서로 활동하며 세계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고,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외교 활동을 펼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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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k@fnnews.com 최종근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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