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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연합시론] 한 시대의 종언 고한 이건희 삼성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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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재계의 거목'이자 '한국 경제 도약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건희 삼성 회장이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졌던 이 회장은 장장 6년 5개월가량 입원 치료를 받아온 삼성서울병원에서 25일 별세했다고 삼성이 밝혔다. 이 회장의 사거는 확고부동한 재계 1위 그룹의 총수, 반도체와 모바일 등 분야에서 세계 선도 일류기업의 토대를 닦은 경영인이 생을 마감한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인생 역정과 그가 경영한 기업의 행로가 명과 암으로 새겨진 한 시대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1987년 선친의 사망 후 45세의 나이로 당시에도 이미 한국 재계의 선두였던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한 것은 물론 '핏줄' 덕분이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이름 없는 전자제품 생산업체였던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고 앞서나가는 기업의 하나로 키워낸 일등 공로자가 이 회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명언은 기업 구성원들에게 혁신을 재촉하는 경영자의 호소 차원을 넘어 기존의 발상에서 벗어난 대담한 시도로 도약을 추구하겠다는 시대정신의 경구로 자리매김했다. 당연히 다른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이 발언이 나왔던 1993년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기점으로 삼성전자는 물론 한국 기업들의 대도약이 시작됐고 한국은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발판을 마련했다. 모바일 시대 초창기였던 1995년 휴대전화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이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수천 명의 직원을 모아놓고 문제의 제품들을 불태운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품질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던 완벽주의 경영철학과 '모험사업'이던 반도체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단력, 일찌감치 모바일 시대의 도래를 예측한 통찰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전에 찬사만을 늘어놓지 못할 이유도 많다. 삼성의 제1인자가 되고부터 거동불능 상태로 병상에 눕기까지 '정경유착'이라는 음습한 단어는 내내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였다. 그룹 조직을 앞세운 '황제 경영', 불법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무모했던 '무노조 경영' 원칙에 대한 집착, '삼성 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한국 사회 곳곳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기업의 의사를 관철하려 했던 행태 등도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개인적 취향을 앞세운 자동차 사업 진출은 대실패로 귀결됐다. 그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세습 경영'을 이어가기 위한 편법의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은 '3세 승계'의 바탕이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불법 행위 등을 이유로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어쩌면 그 이후로도 삼성의 족쇄가 될 이 사건의 뿌리는 이 회장과 그가 이끈 삼성 비서실에서 비롯되어 결국 부(負)의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고인이 남긴 빛나는 업적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도, 그가 떠난 자리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도 남은 이들의 몫이다. 이 회장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삼성에는 많은 변화와 진화가 있었다. 그룹 조직은 사실상 해체됐고 그가 그토록 거리를 두었던 노조의 설립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요 계열사별로 준법감시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투명 경영 체제가 강화됐다. 무엇보다 모든 비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영 세습'의 폐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4세 경영 포기'를 공식 천명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생전에 이런 삼성의 변화를 목도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모르지만, 명계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응원하고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의 기치를 치켜올렸을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고 이제는 느리더라도 정도를 가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요구가 됐기 때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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