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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팔로알토 "대기업과 협업해 긍정에너지 쿨하게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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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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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저항을 밀알 삼아 태동했다. 사회적 차별, 문화적 강박, 자본의 압력에서 자유를 꿈꾸며 시작했기 때문이다. 래퍼 팔로알토는 SK E&S 지원으로 만든 신곡 '에너지'와 뮤직비디오를 다음달 1일 발표한다. 대기업 지원을 받아 곡을 발표하는 힙합 최초 사례다. 팔로알토는 힙합의 '정도(正道)'를 이탈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개인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팔로알토는 "힙합이 저항의 상징이어야 한다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면서 "아티스트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상업적이라고 해서 개인 목소리가 오염되는 건 아니에요. 이미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른 힙합 음악도 상업적인 지원이 많이 있지만 전 세계 음악팬들 마음을 흔들잖아요."

팔로알토가 SK E&S 측 제안을 받아들인 또 다른 이유는 이번 협업이 전적으로 아티스트 재량하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SK E&S 홍보곡이 아닌 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는 곡이 필요하다는 취지도 그의 마음을 잡았다. 팔로알토는 "회사 측에서 요구한 건 햇빛, 에너지, 자연, 바람 키워드를 넣어 달라는 것뿐이었다"면서 "회사 홍보성 곡을 억지로 만드는 거였다면 진작에 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음원 일부분을 살짝 공개했다. '나를 밝혀 줄 햇빛을 원해/어둠이 내 기분을 해치기 전에/All I want is postive energy(내가 원하는 건 그저 긍정적인 에너지)'.

뮤직비디오는 SK E&S 파주LNG 발전소에서 촬영됐다. 청명한 하늘,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공장, 팔로알토의 긍정적인 에너지 3박자를 갖췄다고 평했다. "곡이 완성되고 나니 SK E&S에 주지 말고 저 개인 앨범에 넣고 싶다는 변심이 들기도 했어요. 하하."

SK E&S가 많은 힙합 가수 중에 팔로알토를 고른 건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회사 철학과 맞닿아 있어서다. 팔로알토는 욕설·돈자랑·여자에 관한 가사가 적은 래퍼로 유명하다. 팬 일부는 그를 '힙합계 부처'로 부르기도 한다. 팔로알토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불합리함을 노래했던 힙합 아티스트 커먼을 롤모델로 삼았다"면서 "사회적인 사건에 대해 자기 감성으로 얘기하는 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팔로알토는 영감을 얻기 위해 법륜 스님 말씀을 듣는다. 우주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도 본다. 술·여자·향락 대신 인간과 삶, 그리고 생명의 본질에 관심이 간다고 말한다. 팔로알토는 "5월에 법륜 스님 강연 신청까지 했는데 코로나19로 취소됐다"면서 "최근에는 유튜브로 그분 철학을 곱씹고 있다"고 말했다. "깊이가 있는 지식이 제 내면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소화될 때 좋은 가사가 나와요. '다람쥐나, 토끼나, 길에 난 잡초나, 우리 인간이나 다 똑같아요. 코 막고 10분 있으면 다 죽습니다. 우리는 다 꿈속에 살고 있어요. 거룩하다는 생각을 버리세요'라는 스님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죠. 완전 힙합 아닌가요."

'K힙합'은 최근 외국에서도 주목받는 장르 중 하나. 근 몇 년 동안은 국외 공연을 하는 힙합 아티스트도 많아졌다. '힙부심'(힙합+자부심)이 들 법도 한데, 그는 공을 전적으로 'K팝' 성공에 돌렸다. 팔로알토는 "과거 힙합 가수들은 은연중에 아이돌 그룹을 무시했지만 사실 지금 우리가 외국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건 'K팝 낙수효과'라고 봐야 한다"면서 "한국 힙합 가수들이 가장 선망하는 미국 래퍼들은 이미 한국 K팝 아이돌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에 펀치라인(펀치를 맞은 듯한 느낌을 주는 가사)은 무엇일까.

그가 즉각 답했다. "와이프요."

유부남 유머에 웃음이 터지자 이내 진담을 털어놨다.'대체 뭘 걱정해/난 겁도 없이/저질러 놓고 봐/고장이 난 듯이'

"거리의 악사로라도 음악은 평생 하고 싶어요. 힙합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걱정 없이, 겁도 없이, 고장 난 듯이요." 힙합인 팔로알토, 음악인 전상현이 말했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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