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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감춰져 있던 ‘절반의 역사’, 이 성에도 있었다 [다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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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위의 ‘라곰 배우기’

[경향신문]

경향신문

스카훌트성의 사라진 ‘절반의 역사’에서 드러난 건 여주인들이다. 이들은 수백년 동안 성을 실제 소유·관리했다. 스카훌트성 벽엔 16~20세기 실권자들의 초상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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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남성과 여성이 반반씩 존재하는데, 왜 역사책에는 남성만 다수 등장하고 여성은 극소수만 나올까? 남성들만 역사 발전에 기여해왔기 때문일까? 남성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동안 여성들은 베짱이처럼 놀았을까?

“물론 그러지 않았다!” 오래된 영국 속담 중에 “남자들의 일은 해가 지면 끝나지만 여자들의 일은 끝나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 왕조가 바뀌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등 역사의 획을 긋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한 그 모든 순간에, 여성들 역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역사라는 직물을 함께 짜왔다. “인류를 지탱해온 ‘위대한 절반’의 사라진 흔적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고 최근 번역 출간된 로잘린드 마일스의 <세계여성의 역사>를 보면 여성들의 노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중략) 여성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불을 밝히고, 음식을 준비하고, 인간과 동물의 식사를 제공하고, 농작물을 돌보았다. 그들은 요강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죽어가는 이들과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았다. 또한 집 밖으로 나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았으며….”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이 중요하고도 위대한 여성들의 노동이, 매일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이라고 시시하게 여겨져서 정당한 대접은커녕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여성의 노동이 가사에만 집중되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역사책에 주인공으로 기록되지 못했을 뿐이지, 많은 사회적 제약에도 사업이나 제조업, 금세공,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탁월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했음은 ‘파편’으로나마 역사기록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 파편들로 이루어진 ‘위대한 절반’의 흔적을 찾아 반쪽짜리 세계사를 온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지금은 ‘성평등지수’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스웨덴도 역사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극소수이다. 한때 매일 도서관에 다니면서 두툼한 스웨덴 역사책을 읽었는데, 21세기 초반에 쓰인 스웨덴 역사책에도 태초부터 현대까지 힘있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만 가득했다.

스웨덴 스카훌트성 여주인은
가부장적 문화로 가득찬 성에서
이전 여주인들의 삶을 찾는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주인들은
성을 소유하고 다스린 실권자들
이런 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기록에 없는 이유는 뭘까
이런 여성들이 스웨덴에만 있을까

내가 사는 스웨덴 남부 스코네 지역의 꽤나 한적한 농장에 스카훌트(Skarhult)라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아름다운 성이 하나 우뚝 서 있다. 1562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성으로, 슈베린(Schwerin) 남작 일가의 개인소유 주거지이다. 방이 무려 67개나 되는데, 현재 칼 요한 폰 슈베린(Carl Johan von Schwerin) 남작과 그의 부인 알렉산드라 폰 슈베린(Alexandra von Schwerin),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가 거주하고 있다.

스웨덴 곳곳에는 개인 주거지로 사용되는 성이 꽤 많다. 스웨덴 왕과 왕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답고 웅장한 드로트닝홀름(Drottningholm) 궁전에서 살고, 스웨덴 귀족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멋진 성에서 산다. 이런 성에서 사는 귀족들은 남자라면 빳빳하게 풀을 먹인 칼라에 프릴이 달린 셔츠를 입고, 여자라면 가슴이 깊게 파인 하늘거리는 드레스에 뽀얀 진주 목걸이를 걸고 살 것 같다.

삽상한 바람이 불던 어느 맑은 가을날, 나는 에리카와 구닐라 두 친구와 함께 스카훌트성을 방문했다. 성이 개인 주거지로 사용될 경우에는 사적인 공간으로 외부인의 접근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데, 스카훌트성의 성주는 6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성의 일부를 전시실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개방한다. 무엇을 전시해 놓았을까? 성의 안마당에 면해 있는 성벽에 여인 5명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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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들의 초상화(왼쪽 사진)는 스카훌트성 안에서도 볼 수 있다. 가운데 줄 오른쪽 빨간 정장슈트를 입은 이가 ‘절반의 역사’를 찾아낸 알렉산드라 폰 슈베린이다. 17세기 베아테 폰 쾨닉스마르크의 전시실(가운데)과 스카훌트성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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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폰 슈베린이 스카훌트성의 남작부인이 된 것은 2003년이었다. 스톡홀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과 밤새 춤을 춘 알렉산드라에게 한눈에 반한 칼 요한 폰 슈베린 남작은 바로 다음날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자기와 함께 농장에서 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언론인으로, 경매기관에서 정보매니저로 활발히 활동했던 그녀가 모든 일을 접고 스카훌트성에 여주인으로 입성하기까지는 몇 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스카훌트성을 따로 방문하여 수백년 된 앤틱가구와 싸구려 이케아 가구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알렉산드라의 거실에서 그녀와 ‘피카(커피타임을 일컫는 스웨덴어)’를 즐겼을 텐데, 단순 감기 때문인지 코로나19 때문인지 요사이 본인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침을 한다며 알렉산드라는 전화통화로 만남을 대신하자고 했다.

“성의 여주인은 무얼 하며 사나? 오래된 은식기를 닦아 윤을 내고 꽃꽂이를 하며 살아야 하나?” 대도시에서 전문직으로 활발히 일하던 여성이 갑자기 남작부인이 되어 아름다운 성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져서 가슴이 깊게 파인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겠는가? “물론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농장과 풍력발전소 등 스카훌트성에 관련된 사업체를 관리하다 어느 날 문득 성을 그득 채우고 있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분위기에 흠칫 놀랐다고 했다. 나는 과연 21세기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가? 어딜 보나 남성조각상만 놓여있고 남성초상화만 걸려 있었다. “나 이전에 이 성에 살았던 여주인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러나 성의 자료보관실에는 온통 남성들의 이야기만 있을 뿐, 여성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녀는 스카훌트성의 사라진 ‘절반의 역사’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몇몇 역사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스톡홀름 기록보관소 등 곳곳의 역사기관에서 성의 여주인들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절반의 역사’는 편지와 일기 등 주로 비공식적인 자료에 담겨 있었는데, 이런 자료들 속에서 그녀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수백년 동안 성을 실제 소유하고 관리했던 사람들이 성의 여주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성의 여주인들은 내조자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16세기에 건축가를 직접 섭외해서 스카훌트성을 현재 모습의 르네상스 스타일로 만든 사람은 메테 로젠크란츠(Mette Rosenkrantz)라는 당시 덴마크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고, 17세기에 스카훌트성을 구입해서 60년간 관리했던 사람은 당시 성주로 알려진 폰투스 들라 가르디에(Pontus de la Gardie)가 아니라 그의 아내 베아테 폰 쾨닉스마르크(Beata von Konigsmarck)였다.

그런데 이런 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스카훌트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스웨덴 전역에서 발견된다. 보잘것없는 북쪽의 변방국가 스웨덴이 처음으로 유럽열강에 진입했던 17세기, 스웨덴은 100년 중 75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스웨덴이 열강에 진입한 대가로 지불한 것은 젊은 병사들의 죽음이었다. 전쟁으로 절반에 이르는 병사들이 죽었고, 집에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대신해서 여성들은 집 안팎의 모든 일을 해냈다. 권력을 지닌 남성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갖지 못한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어나갈 때, 농장을 운영하고 사업체를 경영하며 실제 ‘삶’을 지킨 것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런 여성들은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못한 투명인간이었다. 이런 여성들을 발견할 때마다 알렉산드라는 심장이 쿵쾅대고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고 했다.

알렉산드라는 찾아낸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몇몇 역사학자들과 공저로 <숨겨진 여성의 힘 - 스카훌트성 500년 역사 속에서(Den dolda kvinnomakten - 500 ar pa Skarhults)>란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500년간 한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 없던 스카훌트성의 일부를 개방해서 책과 같은 제목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안마당 성벽에 걸린 다섯 명의 여인들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각 세기를 대표하는 여주인들로, 스카훌트성을 소유하고 그에 딸린 영지와 많은 식솔들을 뛰어난 능력으로 다스린 실권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렉산드라의 책과 전시회 덕분에 밝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날 알렉산드라가 스톡홀름의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마 영영 그림자로 남았을 것이다. 전시회는 첫 해 방문객이 3만5000명이 넘을 정도로 큰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출중한 업적을 이루고도 왜 여성들은 역사책에 나타나지 않는 투명인간이 된 것일까? 간단한 질문인데 대답은 복잡할 것 같다. 하지만 쉬운 대답 하나를 찾자면 여성의 법적 지위가 아닐까 싶다. 스웨덴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919년으로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도 꽤 늦은 편이었다. 이렇듯 과거에는 스웨덴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법적 지위가 형편없이 낮아서, 모든 공식적인 문서와 서류는 남편이나 아들의 명의로 작성되어야 했고, 역사는 남성 역사가들에 의해 강자의 입장에서 성의 없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는 스웨덴 공립학교 8학년 역사교과서에 여성의 이름보다 남성 나치당원의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한다며 분개했다.

그녀는 그저 분개에만 머물지 않고, 전시회 내용을 바탕으로 청소년을 위한 짧은 교육용 비디오도 제작했다. 중등학교에서 부교재로 사용되거나 역사교사라면 꼭 참고해야 할 좋은 자료이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디오 제작에 참여한 10대 초반 남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하게 존중 받고 동일한 힘을 가져야 해요” “옛날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큰 능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옛날 여성들은 능력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여성들이 남편의 명의로 그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제 역사책에서 어떤 남성이 무슨 일을 했다고 하면, 그 배후에는 여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알렉산드라는 인류 절반의 이야기만 담겨 있는 반쪽짜리 역사책에 나머지 절반을 채워 넣어 온전한 역사책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고, 온전한 역사책이 만들어질 때까지 전시회는 계속될 것이며 그녀의 노력 또한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라와 통화를 하면서 나는 스웨덴의 ‘성평등지수’가 그냥 높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 역시 스카훌트성의 힘 있는 여주인의 후예가 아닌가? 아마도 나중에, 스카훌트성 안마당 성벽에 21세기를 대표하는 안주인으로 알렉산드라의 초상화가 걸릴 것 같다!

그런데 스카훌트성 전시회에 소개된 여주인들처럼 힘 있는 여성들이 스웨덴에만 있었을까? 나도 비디오 제작에 참여했던 초등학생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책에서 어떤 남성이 무슨 일을 했다고 하면, 그 배후에는 여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나승위

경향신문

갑자기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찾은 남편을 따라 아들 셋을 데리고 남부 도시 말뫼에 왔다. 처음엔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뭘 하며 사나 했는데, 지금은 제법 바쁜 사람으로 통한다. 스웨덴을 한국에 소개하는 책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와 <스웨덴 일기>를 썼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소개하고자 비빔밥을 파는 도시락 가게를 최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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