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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정동칼럼] 중국이 바라보는 ‘약한 고리’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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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과 치열한 전략적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들 중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러한 시각이 중국의 학계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옌쉐퉁(閻學通) 칭화대학교 당대국제관계연구원장이 2013년에 발표한 <역사적 관성(歷史的慣性)>을 통해서이다.

경향신문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옌 소장은 부상하는 중국이 종합국력에서 미국에 근접 또는 추월하려는 시기엔 결국 미국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의 글엔 군사력에서 미국에 약세를 보이는 중국의 현실에 관한 우려가 곳곳에 나타났다. 미국은 중국에 비해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동맹국과 군사 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비동맹 원칙을 견지하는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그는 중국이 비동맹 원칙을 버리고 미국의 동맹국들 중 중국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은 한국과 태국에 접근해 미국과 ‘맹우(盟友)’관계를 공유하라고 제언했다.

당시 중국 내에선 미·중 전략적 경쟁과 동북아 지역에서 가진 한·미 동맹의 의미와 역할을 지적하며 한·중 동맹 체결의 현실성에 의문을 표하는 비판이 나타났다. 그러나 옌 소장은 과거 고려와 조선이 ‘양단(兩端)외교’를 했듯 한국이 미·중 모두와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0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까지의 고려-북송-거란의 시기와 17세기 전반기의 조선-명-후금과의 관계를 역사적 사례로 들면서 2023년경의 한국은 만약 미·중의 이익이 충돌하게 되면 중립의 입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한국을 방문한 옌 소장은 만약 한국인들이 ‘동맹’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운명 공동체’란 용어를 사용해도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런 옌 소장의 주장에 더해 2014년 7월에 성사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을 전후하여 왕이웨이 런민대 국제사무연구소 소장과 역사학자 리둔치우 등이 옌 소장의 의견에 동조하는 글을 연이어 발표했다. 왕 소장은 북쪽의 러시아, 남쪽의 아세안 국가들, 서쪽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끝으로 동쪽의 한국과는 ‘중·한 선린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제안했다. 리둔치우는 한·중관계는 경제와 인문교류 영역에서 동맹관계에 도달했거나 이미 초과했다고 보았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중은 동맹관계로서 동북아의 안정을 공동으로 보호했으며,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은 역사 발전의 조류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의 이러한 기류에 이어 2015년 9월에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는 ‘망루 외교’를 펼쳤다.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기운 것 아니냐는 논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한·중 밀월관계는 2016년 7월8일에 한국 내 사드 배치를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이후 한·중관계는 아직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으며 한·중 동맹의 이야기는 그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오히려 한국은 결국 미국 편이라는 중국인들의 시각과 사드로 인해 중국의 민낯을 보았다는 한국인들의 인식은 감정적인 반감으로까지 번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최근 ‘약한 고리’의 화두가 나타났다. 사드 이후 우리는 정말 중국의 길들이기에 겁을 먹은 것은 아닐까 반문해 보기도 했다. 내 생각은 ‘노(No)’다. 외려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이 충분치 못했던 대중외교가 자초한 결과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싶다.

‘동맹’이란 용어가 부담스럽다면 대신 사용하라던 ‘운명 공동체’를 우리식으로만 해석해 이에 쉽게 동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한미군 분담금을 포함해 일방주의적인 미국의 요구는 당당히 비판하며 대등하고 합리적인 동맹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모습은 분명히 필요하고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한·미 동맹에 대한 입장을 한·미 양자관계의 틀에서만 바라보고, 한반도 정세를 뒤흔드는 미·중관계의 틀에서는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듯한 정제되지 않은 고위급 발언들은 ‘약한 고리’의 이미지를 자초했다.

지금 한국은 중국을 우리식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에 자주적인 모습을 추구하고 동시에 중국을 대국으로 인정하며 한국을 작은 나라로 낮추고 끊임없이 호의를 보이면 과연 중국은 한국을 진심으로 존중해줄까? 경제적 이익이 걸린 중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고한 한·미 동맹을 견지하는 한국과 ‘약한 고리’의 한국 중 중국은 내심 어떤 한국을 더 조심해서 다룰까 반문해봐야 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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