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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하루키 아버지도 `문학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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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새들 건너는 아아 저 너머에 고향이 있네/병사의 몸으로 중이 되어 달에 합장하노니."

남자는 전쟁 통에도 시를 썼다. 적병과 게릴라를 상대로 쉴 새 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중국 전선 한 가운데서도 하이쿠(짧은 일본 시)들을 쓰며 평안을 구했다. 이렇게 몇 자씩 적어 다니던 학교 앞으로 보냈고, 그중 몇 편은 교내 하이쿠 잡지에도 실렸다. 남자의 이름은 무라카미 지아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작가이자,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부친이다.

하루키가 자신의 아버지를 회고한 최초의 저작 '고양이를 버리다'(비채 펴냄)가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그간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 정도로만 알려졌던 지아키를 기억과 자료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한때는 '절연에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던 부친에 대한 하루키의 속마음이 담백한 필치로 담겨 있다.

20대 시절 지아키는 세 번이나 군대에 끌려간다. 저항하지 않는 포로를 무참히 살해하는 걸 목도한 뒤 삶 내내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아침을 먹기 전 그는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고 경전을 외웠다고 한다.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한 매일의 의식이었다. 아버지의 회상을 통해 간접 체험한 하루키도 트라우마를 부분적으로 계승한다. 그는 책에서 "역사의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되뇌인다.

지아키는 학문을 좋아하고, 공부를 생의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교토 제국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교사가 돼서도 하이쿠를 놓지 않았다. 하이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하이쿠 모임도 열었다. 아들의 기억에서도 마찬가지다. "집 안에는 언제나 책이 넘쳐 났다. 내가 십대에 책을 열독하는 학생이 된 것에도 어쩌면 그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57쪽)

하루키는 해변에 유기한 고양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얘기로 에세이를 열고 또 닫는다. 그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품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규정한다.

아버지와 함께한 작은 얘기들 속에 전쟁이 인간에 남긴 상흔과 하루키의 문학적 시원이 동시에 엿보이는 책이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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