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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까지 배송, 車에서 쪽잠… 과로가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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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근로자 올해만 10명 사망… 안타까운 그들의 이야기

택배 기사 A(30대 후반)씨는 지난 13일 새벽 2시, 서울 마포구 어느 컴컴한 골목길에 택배차를 세워놓고 초코파이 하나를 까먹고는 앉은 자리에서 스르륵 잠들어 버렸다. 택배 450상자 배달을 마친 직후의 일이었다.

전날 아침 7시 A씨가 물류센터로 출근했을 때 한글날과 주말새 도착한 택배 수만 상자가 화물차마다 가득가득 실려 있었다. A씨가 그중 자신의 담당 구역으로 가는 택배를 직접 분류했다. 작업을 끝내니 오후 4시. 분류된 A씨 몫은 1000상자가 넘었다. 이 1000상자는 무조건 A씨가 배송해야 한다. 대체 인력은 없다. 그것이 택배업계의 룰이다. 그중 일부를 자신의 택배차에 싣고 A씨는 배송에 나섰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빌라촌 건물에 20㎏짜리 쌀을 짊어지고 올라갔고, 간식으로 500mL짜리 이온음료 한 병을 마셨다. 저녁은 빵 한 개였다. 배송을 마치고 나니, A씨에게 남은 시간은 3시간 3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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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 쌓인 택배물건… 정리부터 고달프다 - 지난달 17일 서울 시내의 한 도로에서 택배 기사가 트럭에 쌓인 택배물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전국택배연대 노동조합에 따르면 전국 택배 노동자는 매주 평균 71.3시간 일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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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토요일 A씨 기상 시각은 오전 5시 30분이다. 아침 식사는 우유 한 잔이다. 출근하면 곧바로 소위 ‘까데기’로 불리는 택배 분류 작업에 투입된다. 보통은 오후 2시 30분 정도에 끝나지만, 휴일 뒤 첫 출근일에는 이틀치가 쌓여 배송 출발이 늦어진다. 그러면 퇴근도 밀린다. 한글날 연휴(10월 9~11일)간 밀린 택배로 인해 하루 400여 상자씩 배송하는 강행군은 20일 새벽에야 끝이 났다.

A씨의 강행군이 시작되던 날, 1년 3개월 차 택배 기사인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소속 김모(36)씨가 자택에서 숨졌다. 그가 나흘 전 새벽 4시 넘어 동료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는 “주무시는데 죄송하다. 너무 힘들다” “집에 가면 (새벽)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터미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서 물건 정리를 해야 한다. 어제도 새벽 2시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난 8일에는 노원구에서 일하던 CJ대한통운 기사 김원종(48)씨도 배송 도중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호송됐지만, 숨졌다. 이달에만 택배 기사 3명이 숨졌다. 택배 기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택배 기사는 회사에 소속돼 있지만 기본급 없이, 택배 1상자 당 700~900원씩 수수료만 받는다. 배송을 많이 할수록 벌이도 늘어난다. 그러나 원한다고 많이 또는 적게 배송할 수가 없다. 기사마다 ‘배송 담당 구역’이 정해져 있어서다. 택배 기사들은 “결국 담당 구역이 업무 강도와 수익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택배차를 가진 기사가 택배 회사에 취직하면 맨 먼저 담당 구역을 할당받는다. 여기서 운명이 갈린다. 당연히 아파트촌이 좋지만, 맡은 지역에 단층 주택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으면 과로가 시작된다. A씨는 “우리가 ‘지번 구역’이라고 부르는, 골짜기 미로 같은 지역을 맡게 되면, 주차하랴 짐 들랴 시간당 배송량은 적어지고 자정 넘어 퇴근하는 게 일상”이라며 “정해진 담당 구역이 싫다면 이직 외엔 답이 없다”고 했다. 결국 지번 구역도 누군가 맡아야 하는데, 대체자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 남부 지역에서 B업체 기사로 일하는 15년 경력 오모(50)씨도 이직을 택했다. 오씨는 수년 전 한때 한 달 7000~8000상자가 배송되는 넓은 지역을 맡았다. 벌이는 월 650만원 정도로 나쁘지 않았지만, 과로는 피할 수 없었다. 오씨는 “3시간 자고 매일 새벽 2시까지 배송하는 생활을 두 달 정도 했는데, 운전을 하다 멍해지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며 “결국 물량이 적고 담당 구역이 좁은 지역으로 어렵게 이직을 했다”고 했다. 요즘 오씨는 주 6일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8시쯤 퇴근하고, 월 480만원 정도를 번다. 오씨는 “지금도 연휴가 싫다"고 했다. 최근에도 오씨는 10월 상순에 밀린 택배 물량 때문에 2주간 매일 1~2시간씩 원치 않는 연장 근무를 했다.

소규모 업체 소속 기사는 더 힘들다. 경기도 파주의 한 택배 기사는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을 제외한 다른 업체 기사들은, CJ 기사 3~4명이 담당하는 구역을 혼자 맡아 배송한다”며 “나처럼 외곽 지역을 담당하면 물량이 적은 날엔 70여개밖에 안 되는데도, 각 배송지가 멀리 떨어져 있어 기름값도 안 나오고 자정 넘어까지 고생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런 문제 등으로 지난 20일 부산 로젠택배 강서지점의 40대 택배 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세금 등을 빼면 한 달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구역’에 대한 원망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 기사는 몸이 아파도 일을 쉬기 어렵다. 담당 구역이 정해져 있어, 오늘 못 한 배송은 결국 내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엄쉬엄할 수도 없다. 오씨는 “돈 욕심에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배송이 늦어지면 고객 항의가 들어오고, 대리점과 재계약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지난 9월 택배노조에 따르면, 택배 기사들은 월평균 458만7000원을 벌지만, 각종 수수료·차량 보험료·차량 월 할부 비용을 뺀 실제 소득은 월 234만6000원이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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