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파괴=창조"…`폼생폼사` 쿠페의 변태(變態)는 무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람보르기니, BMW, 벤츠, 랜드로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만車-154]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2도어 2인승 정통 쿠페(Coupe)를 볼 때마다 가수 이광조의 노래가 떠올랐다. 총각 시절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범접할 수 없었던 여인도 생각났다. 왠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 같았다.

자동차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쿠페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차다. 쿠페는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의 정수라 불린다.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외관과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강력한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갖췄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그러나 예술품을 보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듯, 쿠페도 2도어 2인승이어서 불편하고 활용도가 적은 데다 관리도 어려우며 가격도 비싸 일반 자동차처럼 실용성 높은 가족용 차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애써 개발한 쿠페가 단지 예술품 영역에만 머무는 게 안타까웠던 자동차 브랜드들은 기술과 디자인 발전에 힘입어 쿠페의 미학은 추구하면서 가족용으로 쓸 수 있도록 쿠페를 4·5도어 형태로 변태(變態)시켰다. 정통 쿠페 파괴를 통해 창조된 퓨전 쿠페다.

최근 들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세단을 제치고 자동차 시장 대세가 된 뒤에는 SUV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변태하고 있다. 쿠페 SUV다.

유충이 성충과 비슷한 점이 많은 불완전 변태와 유충과 성충 모습이 다른 완전 변태로 구분하는 곤충 변태 기준에 따르면 퓨전 쿠페는 불완전 변태, 쿠페 SUV는 우화(羽化)를 거친 완전 변태에 가깝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BMW]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잘난 쿠페, 잘라낸 마차에서 유래

쿠페 명칭은 프랑스어로 '자르다(cut)'에서 유래했다. 원조는 평범한 모양에서 벗어나 개성을 강조하면서 두 사람이 타기 위해 만들어진 프랑스 마차다. 잘난 차이자 잘라낸 차인 셈이다.

자동차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른 구조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2인승이나 4인승(2+2) 좌석을 갖췄고, 지붕이 낮아 내부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4인승을 '2+2'라고 표기하는 것은 앞좌석이 중심인 2인승이면서 뒷좌석에 두 사람이 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뒷좌석 공간은 넉넉하지 않고, 차에 따라서는 아이만 앉을 수 있는 공간만 갖춘 것도 있다.

차체 구조로만 보면 정통적 3박스 구조다. 세단과 같이 엔진 룸, 객실, 화물칸이 구분됐다. 일부 수입차 브랜드가 동일한 차량 모델에서 4도어 세단과 2도어 쿠페를 동시 개발해 시판하는 것도 이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같은 차량이라고 하더라도 쿠페는 세단보다 좀 더 개성 있고 날렵한 비례로 디자인된다. 뒷좌석 거주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문이 두 개만 달려 있는 차도 있다. 이런 차는 쿠페라고 하지 않고 2도어 세단이라고 부른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재규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쿠페는 세단, 해치백, SUV 등보다는 실용성이 부족하다. 거주 공간이 부족하고 트렁크 공간도 차체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좁게 설계됐다.

주행 성능과 날렵한 스타일을 위해 뒤 유리가 상당히 눕혀져 뒷좌석 머리 공간도 협소하다. 전고가 낮은 쿠페들은 뒷좌석은 물론 운전석에 타고 내리기에도 불편하다.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쿠페의 정통성은 럭셔리 브랜드가 지켜가고 있다. 희소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누구나 탈 수 있는 쿠페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대표 모델은 '007 본드카'로 선정된 벤틀리 컨티넨탈 GT, 우아한 쿠페의 대명사인 롤스로이스 레이스, BMW 기술과 디자인의 결정판인 BMW M8 컴페티션 등이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현대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산차 브랜드도 이미 46년 전에 쿠페를 선보였다. 국산 최초의 쿠페는 현대차 포니 쿠페다. 현대차는 1974년 국산차 최초 고유 모델 '포니'와 함께 포니 쿠페도 개발했다.

포니처럼 이탈디자인이 디자인한 포니 쿠페는 당시 유행했던 쐐기형 패스트백 디자인을 적용했다. 1974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돼 현대차를 알리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현대차는 포니 쿠페를 양산하기 위해 이탈디자인사 리스타일링을 거쳐 금형 제작과 부품 개발에 착수하고 조립설비까지 갖췄다.

그러나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에 생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1981년 8월 생산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포니 쿠페는 지난해 콘셉트카 '45'로 부활했다. 45는 내년에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최초로 적용한 준중형 CUV '아이오닉 5(IONIQ 5)'로 부활할 예정이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벤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완전 변태-패밀리 퓨전 쿠페

쿠페에 실용성을 결합한 퓨전 쿠페가 등장하면서 쿠페 구분법은 예전과 달라졌다. 정통적인 세단 구조에서 뒷좌석 비중을 줄이고 2개 문을 붙였다는 것에서, 더 개성적이고 역동적인 '쿠페스러운' 차체 스타일을 가졌는지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퓨전 쿠페 시대는 독일계 자동차 브랜드들이 2000년대부터 열었다. 개척자는 2003년 나온 메르세데스-벤츠 CLS다.

벤츠 CLS는 쿠페의 우아하고 다이내믹한 매력에 세단의 편안함과 실용성을 결합해, 4도어 쿠페 세그먼트를 개척했다. 벤츠는 CLS 디자인을 재해석해 5도어 쿠페인 CLS 슈팅 브레이크도 선보였다.

벤츠 CLS의 동생 CLA도 소형차로 4도어 쿠페 계보를 이었다. 2013년 독일 아우토빌트 디자인 어워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선정되는 영예도 차지했다.

벤츠 퓨전 쿠페의 정점은 메르세데스-AMG가 독자 개발한 세 번째 모델이자 첫 번째 4도어 스포츠카인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다.

퓨전 쿠페 대중화에 기여한 모델은 폭스바겐 CC다. 컴포트 쿠페(Comfort Coupe)의 약자인 CC는 매력적인 쿠페 외모와 성능을 갖춘 4도어 4인승 쿠페다. '폭스바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세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와 경쟁하는 아테온도 4도어 퓨전 쿠페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폭스바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포르쉐가 911, 박스터와 카이맨, 카이엔에 이어 네 번째 선보이는 모델이자 포르쉐 최초의 4인승 럭셔리 세단인 파나메라도 퓨전 쿠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스포츠 쿠페, 럭셔리 세단, 왜건을 혼합해 포르쉐 스포츠카 DNA는 계승하면서 세단의 안락함과 왜건의 실용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아우디 A7은 다이내믹한 후방 디자인이 돋보이는 새로운 개념의 5도어 쿠페다. 디자인과 성능은 쿠페의 그것이되 세단의 편안함과 스테이션 왜건의 실용성까지 모두 겸비했다. 아우디 A5 스포트백은 쿠페의 감성적 스타일링, 세단의 안락함과 편의성, 아반트(왜건)의 실용성을 합친 4도어 퓨전 쿠페다.

최근 들어 퓨전 쿠페에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는 BMW다. BMW는 볼륨 모델인 3·5·7 홀수 시리즈에 이어 4·6·8 짝수 시리즈에 쿠페를 합류시켰다.

BMW 최초의 4도어 쿠페는 비즈니스와 레저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BMW 6시리즈 그란 쿠페다. 이후 4시리즈 그란 쿠페에 이어 지난해에는 BMW 쿠페의 정점인 8시리즈 그란 쿠페도 선보였다. 올해에는 콤팩트 세그먼트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4도어 쿠페인 2시리즈 그란 쿠페도 내놨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기아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산차 중에서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의 역작이자 기아차가 2011년 공개한 콘셉트카 'GT콘셉트'를 계승한 스팅어가 퓨전 쿠페에 해당한다.

퓨전 쿠페로 분류하기는 애매하지만 쿠페 스타일로 멋과 품격을 강조한 세단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손흥민 자동차로 유명해진 볼보 S90이 대표적이다.

현재 판매되는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차 K5도 쿠페 스타일로 호평받았다. 미국 유명 자동차매체 잘롭닉은 쏘나타에 대해 "낮고 넓어진 데다 길어지기까지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날렵한 느낌을 주고 있다"며 "미래지향적 쿠페 스타일이 역동적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는 K5에 대해 "공격적이고, 고결하며, 쿠페처럼 보인다"고 좋은 평가를 내렸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BMW]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완전 변태-쿠페 SUV

쿠페는 SUV도 탐했다. SUV에 쿠페 이름을 처음 적용한 모델은 BMW X6다. BMW는 SUV인 X6를 SAC(Sports Activity Coupe)라고 부른다. 쿠페의 특징인 우아한 실루엣에다 SUV의 장점인 실용성까지 지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동생인 BMW X4도 멋과 성능을 모두 추구한 쿠페형 디자인에 SUV의 실용성을 갖춘 SAV다. X3와 거의 같은 크기지만 차량 높이를 낮춰 주행 안정성을 향상했다.

영국판 야구인 크리켓에서 속구를 던지는 투수라는 뜻을 지닌 미니 페이스맨은 미니의 일곱 번째 모델이자 프리미엄 소형차 부문 최초의 쿠페 SUV다.

미니 고유의 고카트 전통은 유지하면서 4륜구동 SUV인 미니 컨트리맨 플랫폼을 기반으로 지상고와 공간 활용도를 높였으며 차체 뒤로 갈수록 내려가는 쿠페 스타일의 루프를 통해 역동성을 강조했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마세라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국내외에서 '쿠페 SUV' 인지도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일각에서는 BMW X6 대신 이보크를 쿠페 SUV의 원조로 여기기도 한다.

이보크 원조는 2008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LRX'다. LRX 디자인을 충실히 반영한 1세대 이보크는 2011년 출시되면서 쿠페형 SUV 붐을 일으켰다.

벤츠 GLC 쿠페는 쿠페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디자인과 스포티한 주행 성능, 다재다능한 SUV의 장점을 결합한 미드 사이즈 쿠페 SUV다.

벤츠 GLE 쿠페는 럭셔리 쿠페 SUV다. 벤츠 GLE보다 길고 넓고 낮게 설계돼 스포티하고 날렵한 쿠페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SUV의 다재다능함과 단단함도 갖췄다.

마세라티가 10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내놓은 SUV인 르반떼도 쿠페 SUV 범주에 포함된다. 역동적이면서도 공기역학에 최적화된 쿠페 형태의 디자인으로 동급 SUV모델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공기저항계수 0.31을 실현했으며, 연비 개선 효과와 함께 우수한 주행 성능을 갖췄다.

매일경제

[사진 출처=르노삼성]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르노삼성 XM3가 쿠페 SUV 시대를 열었다. XM3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쿠페 SUV'를 대중화했기 때문이다.

XM3는 동급보다 길어진 차체를 적극 활용해 쿠페 SUV의 단점인 적재용량 부족을 해결했다. 트렁크 용량은 513ℓ로 준중형 SUV 수준이다.

가까이하기에 너무나 멀었던 쿠페는 디자인과 기술 발전에 힘입어 더 다양하게 변태하면서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쿠페의 변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기성 기자 gistar@mkinternet.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