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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권영민의사색의창] 문예지 위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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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선도하는 매체 기능

상업적 전략 등 역할 변화 비판

대부분 구독자 줄고 경영 위기

‘문화적 위상’ 사회적 관심 필요

최근 문화예술위원회의 한 조사에서 드러난 문예지의 원고료 문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원고를 게재하고도 고료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도 35%를 넘었고 응답자의 70% 가까이 잡지의 정기구독이나 발전기금으로 기부해달라고 요청받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문단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 사례라고 소개한 언론 기사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문예지가 300여 종에 이른다. 각종 문예 단체의 기관지를 포함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인지 형태로 나오는 것들까지 합친다면 이보다 더 많은 숫자가 될지도 모른다. 전국적인 독자층을 상대로 하여 대형 출판사가 간행하고 있는 문예지 20여 종이 문단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외국의 여러 나라를 돌아봐도 독자 대중을 상대로 하는 문예지가 이렇게 많이 간행되고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웃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작은 문학 동인지들을 제외하고는 순수문예지가 출판시장에서 사라진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대중을 직접 상대로 하는 순수문예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세계일보

권영민 문학평론가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우리 문단에서 최초의 순수 문예지로 손꼽는 것은 1919년에 창간했던 ‘창조’(創造)다. 몇몇 문학 지망생들이 자기들 작품을 모아 자비로 출판했던 동인지 형태의 소잡지다. 벌써 백년이 지난 일이다. 창조의 동인으로 가담했던 소설가 김동인, 시인 주요한 등이 우리 근대문학의 초창기 역사를 말해주는 중심인물이지만 이들이 겪었던 가장 큰 고통이 동인지의 출간 경비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동인지 창조를 중심으로 상업적 출판을 도모하고 이를 대중적 문예지로 확대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반 독자를 상대로 출판시장에 진출했던 문예지로는 ‘조선문단’(朝鮮文壇)(1924)이 있다. 소설가로도 활동한 방인근이 사비로 운영했던 이 잡지는 이광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00페이지 정도의 종합 문예지로 출발한 조선문단은 창간호 1500부가 매진되었고 다시 동일 규모로 재판을 발간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3000부의 판매 실적을 유지하는 문예지가 지금 10여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초창기 문단에서 거둬들인 이 같은 성공은 놀라운 일이다. 문예지로서 원고료를 필자에게 정식으로 지불하기 시작한 것도 조선문단이요, 신인을 발굴하는 문단진출 제도를 공식화한 것도 조선문단이었다. 특히 매호마다 ‘조선문단 합평회’를 통해 문학의 현장을 종합적으로 소개 진단하는 의미 있는 장치도 처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제도는 지금도 대부분의 문예지에서 비슷하게 따라 하고 있다.

6·25전쟁의 혼란기를 뚫고 문단을 지켜준 ‘현대문학’은 월간 문예지로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순문예지로 살아남아 있다. 그 뒤를 이어 1970년대 초에 ‘문학사상’이 월간 문예지의 대열에 합세하였고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세계의 문학’ ‘문예중앙’ ‘실천문학’ 등이 등장하여 계간지의 시대를 열었다. 시 전문지로 ‘현대시학’ ‘시문학’ ‘심상’ 등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근래에는 ‘문학동네’를 비롯한 몇몇 계간지가 새로 등장하여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들 문예지는 한국문학을 선도하는 매체로 기능하면서 순수문학의 사회적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신문학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예지의 역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 문학을 이끌어온 이들 순수문예지가 대부분 경영의 위기를 맞고 있다. 판매 부수가 떨어지고 정기 구독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담이 늘어가는 제작비 때문에 원고료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적자 폭이 커지고 있지만 그 발간을 포기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이 문예지의 역할과 성격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자기네 출판사 위주의 상업적 전략을 중시하면서 범문단적 공기(公器)로서의 성격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분파적이어서 문단의 파벌이나 문단 권력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예지의 위상 변화와 관련된다는 주장도 생겨났다. 게다가 원고료의 불공정 시비까지 일면서 문학인들이 문예지를 불신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문예지의 위기가 절박하게 느껴진다.

문예지는 대중적인 독자층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만, 상업성에 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문예지의 발간 자체가 비영리적 문화운동의 실천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언제나 문화 전반의 경향을 통합하고 조절할 수 있는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적인 지원보다는 민간 차원의 후원이 중요하다. 문예지는 대부분 상업적인 광고를 싣지 못하고 있다. 한정된 독자를 갖고 있으므로 광고주들이 이를 외면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문예지에 기업광고를 조금씩 협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적자에 허덕이는 문예지의 경제적 부담을 크게 덜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업 메세나 운동’처럼 제도화할 수 있다면 기업의 문화적 위상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 문예지가 위기에 몰려 있다. 문학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 문예지를 살려야 한다. 모든 문학인이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문예지에 발표하고 독자 대중이 문예지를 통해 문인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사회가 이를 후원한다면 문예지의 존재 의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문예지가 그 문화적 위상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문학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관심이 필요하다.

권영민 문학평론가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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