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명성황후 시해 목격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조선에 남긴 흔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문화재청,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전

시해 현장 약도, 증언서 선보여

러시아공사관 공사 감독한 인물

조선일보

19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사바틴이 공사 감독한 러시아공사관 영상과 제물포구락부 등 건축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병사들이 궁궐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4시. 경복궁 숙소에서 잠들어 있던 러시아인 사바틴은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당시 그는 일본의 위협을 느낀 고종의 요청으로 왕의 호위 임무를 맡아 궁에 체류 중이었다. 곧바로 침상을 뛰쳐 나온 사바틴은 명성황후의 처소인 건청궁 곤녕합에서 사건의 현장을 목격한다. “일본인들은 조선 여인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질질 끌어내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중략) 일본인 지휘관이 내게 다가와 매우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왕후를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은 왕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가까스로 궁궐을 빠져나온 그는 즉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했다. 이후 사바틴이 남긴 생생한 증언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이 일본에 의한 만행임을 전 세계에 알린 결정적 근거가 됐다.

조선일보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사바틴의 증언서.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근대기 조선에서 서양식 건축과 토목 사업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러시아인 사바틴을 주제로 전시를 연다. 19일부터 11월 11일까지 덕수궁 중명전에서 개최하는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 특별전이다. 정식 이름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 1883년 인천해관 직원으로 조선에 입국해 1904년 러일전쟁 발발 후 완전히 떠날 때까지 조선의 궁궐 건축물과 정동 일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를 맡았다. 조선 사람들은 그의 성(姓) 세레딘 사바틴을 음차해 ‘살파정’ ‘설덕’ ‘살파진’ 등으로 불렀다.

조선일보

근대기 조선에서 활동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초상화. /문화재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880년대 초 상하이에 머물던 청년 사바틴은 해관원을 모집하던 묄렌도르프 일행에 의해 조선에 왔다. 인천해관에서 승선 세관감시원으로 일하다 1888년 한성으로 가서 궁궐 건축을 담당했다. 경복궁 내 관문각, 러시아 공사관 건축 공사에 참여하며 고종의 신임을 얻는다. 1890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본국에 보낸 문서에서 사바틴이 러시아공사관 건축 공사의 적임자라고 강조하면서 “원래 직업이 건축가는 아니지만, 주로 독학을 통해 건축술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 근면한 사람”이라고 썼다. 사바틴은 을미사변 목격 뒤 위협을 느껴 잠시 조선을 떠났다가 1899년 다시 돌아왔다. 이정수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확실한 것은 관문각과 러시아 공사관뿐이지만 독립문, 중명전, 정관헌, 제물포구락부, 손탁호텔 등도 그가 설계했거나 건축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조선일보

완공된 러시아 공사관 본관과 정문 전경.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문화재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사바틴의 생애와 활동을 영상과 건축 모형, 기록과 사진으로 펼친다. 을미사변에 대한 사바틴의 증언서와 그가 그린 경복궁 내 명성황후 시해 장소 약도(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소장)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 공사관 건립 과정도 상세히 소개한다. 러시아 건축가 류뱌노프가 설계한 최초 설계안이 막대한 예산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자, 이후 사바틴이 예산과 설계를 수정해 공사를 완료한다. 러시아 공사관의 최초 설계안과 준공안, 밀린 공사 대금을 요청하는 사바틴의 청원서 등 준공까지의 우여곡절을 볼 수 있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사바틴은 스스로를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건축가’라 칭하며 한국의 유구한 전통과 서구의 새로운 동향을 결합해 본인의 건축물 안에 녹여냈다”며 “그의 삶과 활약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한국에 러시아 문화가 존재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러시아 공사관 본관 최초 설계 도면 정면도.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허윤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