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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설왕설래] 광기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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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광기(狂氣).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미친 기운’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광기가 번득이지 않은 때는 드물다. 사서에 남은 역사 기록은 어쩌면 시간 속에 새겨진 광기의 흔적인지도 모르겠다.

마녀사냥. 유럽을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건이다. 14세기부터 수백년간 이어졌다. 20만∼50만명이 산 채로 화형대에 올려졌다고 한다. 그런 잔혹한 일이 왜 벌어졌을까. 그즈음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다. 흔들리는 기독교적 가치관. 전통 가치를 지키려는 광신도 집단은 이단을 단죄했다. 신의 이름으로. 하지만 그것은 광기에 물든 인간사냥일 뿐이다.

홍위병 운동. 중국 대륙에 피바람을 부른 광기다. 홍소병(紅小兵). ‘붉은 어린 병사’들은 “자본주의 사상·문화·관습을 몰아내자”며 백주에 살육을 저질렀다. 어린 학생들이 왜 그렇게 날뛰었을까. 부패한 사회에 분개해서? 그들 뒤에는 마오쩌둥이 있었다.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시커먼 마음을 감춘 채. 197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은 문화혁명을 반성한다. “그것은 광기의 시대”라고.

광기에 젖은 것은 마녀사냥과 홍위병 운동뿐일까. 이데올로기 전쟁.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6·25가 바로 그런 전쟁이다. 영원한 이데올로기는 존재할까. 시간이 흐르면 토담처럼 무너진다.

조정래 작가 발언을 두고 ‘광기 논쟁’이 벌어진다. 조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 민족 반역자가 된다.” “150만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런 글로 답했다. “이 정도면 광기다”, “문재인 대통령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國士館)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아는데 ‘일본유학 하면 친일파’라니….” 조 작가는 화가 난 모양이다. “저는 그 사람한테 대선배”라며 “경박하게 무례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언론을 향해서는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주어를 넣었는데 왜곡했다”고 했다.

토착왜구? 진영 갈등 속에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 프레임 용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성철 스님)와 같은 선어(禪語)가 아니다. 그 용어 자체가 광기를 담은 것은 아닐까. 광기의 시대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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