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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故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박원순 성추행 의혹’ 피해자 “꿋꿋하게 살아 진실 규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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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 A씨가 15일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다”면서도 “괴로운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약 300여개 여성인권단체가 피해자와의 연대를 위한 공동행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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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 회원들이 15일 서울시청 옆 서울도서관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2020년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선출직 고위 공직자들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공론화된 가운데 직장 내, 특히 공직기관의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또 “이 사건들에 대해 1차적 책임이 있는 집권 여당은 ‘피해 호소인’이라는 모호한 명칭을 사용하면서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대신 형식적인 사과만 하고있다”며 이른바 ‘진보’ ‘민주’라는 한정된 정치구조 내에서 배제됐던 젠더 평등의 실질적 실현을 철저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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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288개 단체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서울시청 앞에서 피해자와 연대하는 내용을 담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은 지난 7월8일 A씨가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A씨의 입장문은 한국여성의전화 도경은 활동가가 대독했다. A씨는 입장문에서 “인권운동가가 막강한 권력 뒤에서 위선적이고 이중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필요하다며 “(피해자가) 절대적 약자일 때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가진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이기를 빈다”고 밝혔다. 이어 “100일은 저에게는 너무나도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면서도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마음과 그를 통해 앞으로 바뀌게 될 많은 일을 벅찬 가슴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씨 또한 기자회견에서 대독된 발언에서 “박원순 사건 피해자분께서 겪는 현실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반복해 보고 있다는 기시감이 든다”면서 “앞서 비슷한 일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 굳건한 연대와 변함없는 지지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참여자들은 최근 불거진 선출직 고위공직자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여성들에게 과연 민주주의가 있었는가”라며 “큰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끈끈한 남성연대를 기반삼아 기존의 성차별 관행을 활용하고 성폭력을 큰일의 보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행동은) 이른바 ‘진보’와 ‘민주’라는 한정된 정치구조 내에서 배제되었던 젠더 평등의 실질적 실현을 철저히 촉구”하기 위해 출범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공동행동은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직장 내 성폭력·2차피해 근절 등을 위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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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 회원들이 15일 서울시청 옆 서울 도서관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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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날 공개된 박 전 시장 피해자의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어렵고 귀한 마음을 모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생활을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법적 절차들의 상실과 그로 인한 진상규명의 어려움, 갈수록 잔인해지는 2차 피해의 환경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을 느끼며 절망하다가도 저를 위해 모아 주시는 마음 덕분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저의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거주지를 옮겨도 멈추지 않는 2차 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며,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해소할 수 없는 괴로움과 믿었던 사람들에 의한 아픔 때문에 가슴이 막혀 숨을 쉬는 것도 어려운 날들을 겪고 있지만, 온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래도 다시금 뜨거운 숨을 내쉬며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흘려보내며 매일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평범했던 일상과 안전, 심신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 꿈꾸는 미래. 당연한 것 같았지만 제 손에서 멀어진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허망함을 느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마음과 그를 통해 앞으로 바뀌게 될 많은 일을 벅찬 가슴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께서 함께 모여 저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시고, 나아가 저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싸워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머물러 있지 않다는 희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여성과 약자의 인권 보호에 힘쓰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조직에서 일어났기에 더 절망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권운동가가 막강한 권력 뒤에서 위선적이고 이중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가깝고 믿었던 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상대편이 절대적 약자일 때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가진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이기를 바랍니다.

이 끔찍한 사건이 단순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약자의 인권에 대한 울림이 되어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정, 정의, 평화, 인권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책임과 권한 있는 인사들이 이제라도 자리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한평생 약자를 위해서 싸워오신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갖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00일,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많은 의혹과 괴로운 과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서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습니다. 실체적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힘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뜨거운 마음, 큰 뜻으로 끝까지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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