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공동행동 출범…거주지 옮긴 朴피해자 "꿋꿋이 살아 진실 규명"
安 성폭력피해자 김지은씨 "피해자 현실 보며 기시감…굳건한 연대"
피해자 측 지난 7일 신원누설 관련 경찰에 추가고소하기도
'시민서포터즈' 모집 등 진상규명·실태조사 및 토론회 개최 등 예고
15일 288개 단체가 모여 출범한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공동행동'이 서울시청 앞에서 "우리는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간다"가 새겨진 보랏빛 우산을 들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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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지 100일을 맞아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을 비롯한 280여개 단체가 사건 대응을 위한 연대체를 출범시켰다. 피해자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었다"며 끝까지 진실 규명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한국여성민우회·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총 288개 단체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의 출발을 알렸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의 비서로 4년간 일했던 A씨가 지난 7월 9일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난무 등 여전히 변하지 않은 현실을 성토하며 "우리는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투쟁 의지를 밝혔다.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공동행동'의 기자회견에서 연대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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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A씨는 "100일은 저에게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며, 한국여성의전화 도경은 활동가가 대독한 발언문을 통해 그간의 고통스러운 심경을 밝혔다. A씨 측은 지난 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신원누설 금지'가 위반됐다며, 경찰에 추가고소를 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A씨는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법적 절차들의 상실과 그로 인한 진상규명의 어려움, 갈수록 잔인해지는 2차 피해의 환경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을 느끼며 절망하다가도 저를 위해 모아주시는 마음 덕분에 힘을 내고 있다"며 "현재 저의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주지를 옮겨도 멈추지 않는 2차 가해 속 다시는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며,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다"며 "평범했던 일상과 안전, 심신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 꿈꾸는 미래 등 당연한 것 같았지만 제 손에서 멀어진 많은 것을 바라보며 허망함을 느끼고 좌절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연대의 물결 속에서 변화의 불씨를 봤다는 작은 희망도 내비쳤다.
A씨는 "많은 분들께서 함께 모여 저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시고, 나아가 저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싸워주시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가 머물러 있지 않다는 희망을 느꼈다"며 "이 끔찍한 사건이 단순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약자의 인권에 대한 울림이 되어 우리 사회의 본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도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책임과 권한 있는 인사들이 이제라도 자리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한다"며 "사건을 둘러싼 많은 의혹과 괴로운 과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서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했던 김지은씨도 "용기와 연대만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며, A씨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씨는 대독된 서면을 통해 "사건을 고발하고 세 번째 맞는 가을이지만 법원의 명확한 판단을 받았음에도 평범한 일상은 아직도 저 멀리 있다. 지엄한 법 앞에 유죄 판결을 받아도 억울하다 주장하며 속죄 없이 피해자를 다시 고통 속에 가두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며 "법의 테두리에서 인정받은 사람도 이같은 상황에 있는데 공정한 수사조차 못 받는 분들의 억울함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또한 "박원순 사건 피해자 분께서 겪고 계시는 현실을 보며 지난 시간을 반복해 보고 있다는 기시감이 든다. 노동자로서의 일상에 대한 보호, 사실에 대한 엄정한 판단, 2차 가해자들에 대한 비판 등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며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수는 없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 굳건한 연대와 변함없는 지지의 마음을 전한다"고 A씨를 격려했다.
15일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박원순 전 시장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가해' 발언들을 비판하는 피켓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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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으로 서울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A씨에게 힘을 보탠 서울시 공무원 '보통'씨의 목소리도 나왔다.
보통씨는 "문제가 발생한 상황은 서울시의 오랜 관행과도 연관이 있다. 시장 비서실에는 5·6급 비서관 외 젊은 여성비서가 2명 있는데, 통상 여비서는 단정한 외모에 미혼의 경력이 짧은 '꽃같은 아가씨' 공무원들이 담당했다"며 "업무처리 중심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인력배치가 박 전 시장 재임기간 내내 계속됐다.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시장실을 거쳐간 관리자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부족했단 결론이 나온다"고 짚었다.
아울러 그동안 시청 내부의 성비위 문제에 미온적으로 반응한 서울시의 안이한 대처를 꼬집으며, "아무리 '간지'가 흐르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관리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실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서울시 관리자들은 진정 조직이 발전하길 원한다면 성희롱·성추행 등에 강력하게 대처해 유사사례를 예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공동대응은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2차 가해 대응 △지방자치단체 권력 견제 및 성평등 민주주의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문화 근절 등을 활동목표로 내세웠다. 이들은 향후 개인연대 형태의 '시민 서포터즈'를 모집해 박 전 시장 사건의 진상조사 및 해결을 촉구하는 '천만 시민' 연대서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박 전 시장 사건을 넘어서 '성평등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각종 성평등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동시에 공공기관 내 성차별·여성혐오 문화 척결을 위한 실태조사 및 토론회를 연내 개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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