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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갤러리 산책] 우향 박래현 '노점' 실물로 영접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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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삼중통역자'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여류 화가 박래현(1920~1976)은 1956년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해 6월 제8회 대한민국미술협회전(대한미협전)과 11월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잇달아 쾌거를 이룬 것이다. 대한미협전과 국전 모두 당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시였다. 수상작은 각각 '이른 아침'과 '노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 중인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에 두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두 그림 모두 약 2.5mX2m 크기의 큰 작품이어서 압도적 느낌을 주는데 무엇보다 표현 양식이 독특하다.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노점'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초 개관 50주년 기념으로 소장품 선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300'을 발간했다. 선집은 '노점'에 대해 입체파 양식을 수용했다고 소개한다.


"공간의 깊이감을 배제하고 평면적이고 기하학적인 색면으로 인물과 거리를 묘사해 입체파의 면분할 기법을 연상시킨다." 박래현은 자신의 글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가 무쌍하고 항상 싱싱한 젊음을 보여주는 작가"라며 파블로 피카소(1881~1973)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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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채색, 267x21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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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노점' …267x210㎝ 크기 입체파 양식 독특
김기창의 아내가 아닌 작가 박래현…회화 72점·판화 39점 등 138점 공개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이른 아침'도 전시…부부가 함께 그린 '봄 C'도 인상적


'박래현,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된 전시다. 내년 1월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박래현의 작품 138점이 공개된다. 회화 72점, 판화 39점, 태피스트리 12점, 도자기 10점, 드로잉 5점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우향(雨鄕) 박래현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전시는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의 아내가 아닌 미술가 박래현을 독자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박래현은 1947년 김기창과 결혼했다. 박래현은 대지주의 딸로 일본 도쿄 유학까지 다녀올 만큼 집안이 부유했다. 반면 김기창은 청각 장애가 있는 가난한 청년 화가였다. 김기창은 결혼 뒤 박래현에게 우향이라는 호까지 지어주며 애정을 나타냈다.


삼중통역은 박래현이 1967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마친 뒤 김기창과 함께 미국 여행에 나서면서 겪은 일화에서 따온 제목이다. 박래현은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다시 구어(口語)와 몸짓으로 옮겨 김기창에게 설명해야 했다. 박래현은 당시 함께 여행한 시인ㆍ수필가 모윤숙(1910~1990)에게 스스로를 삼중통역자라고 칭했다.


통역은 이번 전시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박래현은 1950년대 서구의 모더니즘 기법으로 한국화의 현대화를 모색했다. 또한 회화에 머무르지 않고 판화, 태피스트리 같은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실험했다.


박래현은 해외 전시로 한국화의 국제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957년 결성된 백양회의 창립 회원이었다. 박래현의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1년 후배인 천경자(1924~2015)도 백양회 창립 회원이었다. 백양회는 민간 단체로는 처음으로 해외 순회전을 개최했다. 1950년대에 대만과 홍콩에서, 1960년대에는 일본ㆍ필리핀ㆍ미국 등지에서 국제 전시를 열었다. 요컨대 박래현은 서구 미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해외에 한국 미술을 알리는 통역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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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영광', 1966-67, 종이에 채색, 134x16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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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잊혀진 역사 중에서', 1963, 종이에 채색, 150.5x135.5㎝,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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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 중에는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을 때 출품한 '영광(Glory)'도 있다. 노랑, 빨강, 검정으로 이뤄진 추상 작품이다. 박래현은 1950년대 후반 추상화가 세계적 흐름이라고 판단하고, 1960년대 들어 추상화 작업에 몰두했다.


박래현은 추상 작품은 화선지에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흠뻑 젖은 물감이 번지는 효과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박래현은 1965년 '동양화의 추상화'라는 글에서 화선지에 먹이 스미는 아름다움을 동양의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 글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래현은 글에도 능해 1960~1970년대를 풍미한 여성지에 많은 수필을 남겼다.


부부가 함께 그린 1956년 작품 '봄 C'도 인상적이다. 박래현이 나무를, 김기창은 참새를 그렸다. 박래현은 나무 몸통을 굵은 필치로 대범하게 표현했다. 거대한 기운이 용솟음치듯 강렬한 인상을 준다. '초저녁' 역시 1956년 작품이다. 고양이 몸통을 소름돋게 표현했다.


전시 공간은 4개로 나뉘었으며 각각의 전시 공간은 '현대', '생활', '추상', '기술'의 열쇠말을 갖고 있다. 기술을 열쇠말로 삼은 4부 전시 공간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가 전시돼 있다. 박래현은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적 기술을 추구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가 후 곧바로 미국 유학을 택했고 7년 만에 돌아와 1974년 귀국 판화전을 열었다. 그의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 개인전이었다. 박래현은 김기창과 결혼한 뒤 주로 부부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박래현과 김기창의 부부전은 1947년부터 1971년까지 12차례 열렸다. 박래현의 판화 작품은 현대의 판화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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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시간의 회상', 1970-73, 종이에 에칭, 61x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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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화장', 1943, 종이에 채색, 131×154.7㎝,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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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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