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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우리말 탄압 맞섰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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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 때 압수됐다 해방 후 발견

1957년 '큰 사전' 편찬의 바탕된 육필 원고

주시경 첫 한글사전 '말모이' 원고도 보물

2001년 등록문화재 도입 이래 '승격'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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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조선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는 모습. 문화재청은 8일 '조선말 큰사전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 등 기존의 등록문화재 2종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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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년 후인 1929년 10월 31일, 사회운동가‧종교인‧교육자‧어문학자‧출판인‧자본가 등 108명이 ‘조선어 사전’ 편찬 모임을 결성했다. 이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로 이어진 모임은 13년에 걸쳐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을 정비하면서 우리말을 사전 원고에 담았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도 후원금 1000원(현재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했다. 당시 개성 송도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이상춘 교사는 조선어학회에 자신이 모은 9만여 한글낱말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뤄지던 사전 작업은 1942~45년 일제의 탄압(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중단됐다. 사건 관련자인 이윤재, 한징은 옥중 사망했으며 최현배 등 11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원고는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 그러다 해방 후인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원고가 기적적으로 발견돼 이를 바탕으로 첫 우리말 사전 발간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국민적 노력의 증거물인 ‘조선말 큰사전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와 그 바탕이 됐던 ‘말모이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가 국가지정문화재(보물)가 된다. 문화재청은 제574돌 한글날을 앞둔 8일 이들 등록문화재 2종 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2001년 근현대문화유산을 별도 관리하는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이래 이 같은 ‘승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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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예고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 사진은 독립기념관(왼쪽) 및 한글학회가 소장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로 십수년에 걸친 수정, 교열 작업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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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원고엔 십수년에 걸친 집필‧수정‧교열 작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방 후인 1947년 10월 9일 ‘조선어 큰 사전’ 제1권이 발행됐고 수년간 개‧증본을 거쳐 1957년 총 6권의 ‘큰 사전’이 나왔다. 이번에 보물이 되는 것은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한글학회(8책), 독립기념관(5책), 개인(1책) 등 총 3개 소장처에 분산돼 있다.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개인 소장본(미공개 자료)도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발굴돼 함께 지정 예고됐다.

함께 보물 지정 예고된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사전을 의미를 하는 순우리말.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돼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뤄졌다. 원래 여러 책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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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8일 보물로 지정 예고한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말모이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써 있다.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처음과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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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썼고 ‘알기’, ’본문‘, ’찾기‘, ’자획찾기‘의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되는 등 사전 편찬을 위한 원고란 게 한눈에 파악된다. 1916년 김두봉이 이를 바탕으로 문법책인 『조선말본』을 간행하기도 했으나 3‧1운동을 계기로 일제 감시를 피해 상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문화재청 황정연 학예연구사는 “비록 원고 일부만 남았지만 이들로부터 이어진 사전 편찬 체계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의 바탕이 됐다는 점은 학계에서도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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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전편찬회 창립 광경 신문기사(1929.11.2. 동아일보).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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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바탕으로 증보와 수정을 거듭해 1957년 발간된 '큰 사전' 6권.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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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2건은 1972년 안중근 의사 유묵(보물 제569호)과 윤봉길 의사 유품(보물 제568호), 1997년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보물 제1245호) 이래 처음으로 보물이 되는 근현대문화유산이다.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구한말 유물까지 대상으로 하는 관행이 굳어져 왔다.

문화재청은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역사‧학술적 가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자문회의에서 검토해왔고 이번이 첫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황 연구사는 “관련 학술연구가 크게 축적돼 가능해진 변화”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근현대 지정문화재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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