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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北 전직 외교관 조성길

2년전 잠적한 이탈리아 주재 北 대사 조성길...지난해 7월부터 국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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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확인되면 황장엽 이후 최고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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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길(오른쪽에서 두번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재임시절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트레비소 인근에서 열린 한 문화 행사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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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1월 이탈리아에서 망명을 요청하며 잠적했던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지난해 국내에 입국해 체류중인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망명이 최종 확인되면,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 비서 이후 최고위급이 된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망명은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7월부터 국내에서 국내에 체류해 온 듯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조 전 대사대리는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해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정보위 소속 의원도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입국 사실을 확인했다. 국가정보원도 “신변 보호 등의 이유 때문에 구체적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했다. 조 전 대사대리가 현재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은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조 전 대사대리가) 이탈리아를 떠났고 어딘가에서 신변 보호 중”이라고 했다. 당시에도 국정원은 ‘우리 정부가 신변을 보호하고 있느냐’는 질의에 답변을 피했다. 이미 이때부터 국정원이 조 전 대사대리를 국내로 입국시켜 보호 중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당초 조 전 대사대리는 2018년 11월 망명 요청 당시 미국 등 서방행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조 전 대사대리의 미국 망명 신청과 관련해 “내부 지침에 따라 답변할 수 없다”고만 했다. 때문에 그간 조 전 대사대리의 미국행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국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 전 대사대리가 미국을 경유해 국내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잠적 당시에도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해 제3국을 경유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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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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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집안의 엘리트였던 조성길...김정은 체제 첫 재외공관장 탈북

조 전 대사대리는 같은 외교관 출신으로 2016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공사로 있다가 탈북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보다 고위급이다. 대사급 인사 중에는 1997년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20여년 만이다.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재외공관장의 첫 탈북 사례다.

실제 조 전 대사대리는 북한 외무성에서 손 꼽히는 엘리트 외교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의원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조 전 대사대리는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이고, 장인은 태국 주재 북한 대사를 지낸 리도섭"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외교 전략상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등의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를 중요한 요지로 꼽는다. 조 전 대사대리가 이탈리아에서 근무한 것도 북한 당국의 신뢰가 그만큼 컸던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2015년 5월 이탈리아에 부임한 조 전 대사대리는 1등 서기관으로 일을 하다가 2017년 10월 문정남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가 추방된 뒤 대사를 대리해 왔다. 2018년 3년 임기가 끝나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불응해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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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의 가족의 한국행을 지지하는 시민연대 결성 기자회견에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현 국민의힘 의원)가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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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 여의치 않았나? 한국행 택한 이유는?

2018년 11월 망명을 요청하며 잠적했던 조 전 대사대리의 행보는 지난해 1월 국내외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는 이탈리아 등 외국 정부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미국과 영국 등 제3국으로 망명을 타진 중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후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형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을 망명시킨 반북단체 자유조선이 조 전 대사대리를 돕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2차정상회담을 앞두고 당시 북미 외교 당국간 의견 조율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터라, 북미관계가 어그러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조 전 대사대리 망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점쳐졌다.

조 전 대사대리가 미국 등 제3국이 아닌 한국을 정착지로 택한 것은 같은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태 의원은 지난해 1월 자신의 블로그에서 조 전 대사대리를 '친구'라 칭하며 "친구여, 민족의 한 구성원이며 북한 외교관이였던 나나 자네에게 있어 한국으로 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공개적으로 한국행을 권유했다. 특히 태 의원은 "한국으로 오면 신변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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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남부에 위치한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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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공개에 북 가족 신변 우려... 비공개 배경 공방도 예상

비공개 절차를 통해 국내에 들어왔을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체류 사실이 공개되면서 후폭풍도 우려된다. 2018년 망명 당시 고교생으로 알려졌던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은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가 조부모가 있는 북한으로 송환됐다고 밝힌 상황이다. 한국행 공개 이후 딸을 비롯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 전 대사대리의 부인은 현재 국내에 함께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1년 넘게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체류 사실을 밝히지 않은 배경을 두고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방이 예상된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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