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없는 세계를 겪어봤어요.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독자로서 너무 힘든 일입니다. (도서정가제를 개악하면) 이익을 보거나 무언가 손에 쥘 사람은 소수일 거예요. 주로 작은 사람들,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 자본이나 상업성 너머를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소설가 한강)
소설가, 시인 등 작가들이 현행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정부의 개정 움직임에 반대하며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는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작가 대상 도서정가제 여론 조사 발표 및 작가 토크’ 행사를 열었다.
박준 시인(왼쪽)과 소설가 한강.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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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 참석한 소설가 한강은 “도서정가제가 없는 시간을 되살려보면, 일정시간이 지나 70%까지 할인되는 책들이 있었고, 크게 할인된 책들이 느닷없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말했다. 또 “도서정가제 정책 하나를 딛고 아주 작은 씨앗이 자라고 있고, 그 빚을 지고 있는 게 이 정부이고, 우리를 끌고 가는 센 힘”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도가 변화할 때 부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짧게 보면 출판사는 재고 쌓인 것을 처리하고 독자는 책을 싼값에 살 수 있을지라도, 그 잔치가 지나고 나면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며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그동안 신간이 2만종 늘어났다고 하는데, (이번에 도서정가제를 개악하면) 태어나지 못한 책들이 죽음을 겪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독자들이 받게 될 것이다. 어린 세대에게 너무나 (큰) 파장을 미칠 것이고 신인 작가들도 염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한강. <한겨레> 자료사진 |
시인 박준. <한겨레> 자료사진 |
함께 작가 토크에 나선 박준 시인도 “도서정가제는 출판생태계를 보호하는 숲”이라며 “(정부가) 기존 정책을 뒤엎거나 폐지하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운동성에 누가 되지 않고 새로운 도움을 주는, 작가들을 위한 정책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출판인회의는 소설가 김연수, 정유정, 김탁환, 시인 나희덕, 만화가 김금숙 등 작가 19명에게서 받은 도서정가제 지지 의견을 공개했다. 작가들은 “산책 나간 길에 동네서점에서 흥미로운 책을 사 들고 돌아와 읽는 밤을 꿈꾸기에, 도서정가제를 지지한다”(김연수), “도서정가제는 작은 출판사와 동네 책방들을 살리는 최소한의 산소호흡기”(정유정), “도서정가제는 작가, 출판사, 책방, 독자가 공생하고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나희덕), “책 한권을 만나는 것은 한 우주를 만나는 것, 완전도서정가제는 그 우주를 지키는 기본”(김금숙) 등의 의견을 밝혔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소설가는 “작은 생산자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도서정가제를 이끌어주시기 바란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날 한국출판인회의는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18일부터 22일까지 전국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도서정가제 관련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응답자 1135명 가운데 69.9%가 도서정가제를 유지(39.7%) 또는 강화(30.2%)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도서정가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0%였다.
행사에 참석한 신현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도서는 시장경제 대상이 아니라 정신문화의 모체”라며 “만일 현행 도서정가제가 개악된다면 출판 생태계의 붕괴는 명약관화하다”고 말했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소모적이고 반문화적인 ‘책값 추가 할인’ 요구를 즉각 중지하고 작가, 출판사, 서점, 독자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문화부흥의 목소리에 귀를 열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소설가 김연수. <한겨레> 자료사진 |
시인 나희덕. <한겨레> 자료사진 |
소설가 정유정. <한겨레> 자료사진 |
소설가 정세랑.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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