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여당의 요청에 따라 주식 양도세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 부분은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장에서 열린 서울-세종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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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개별종목 주식을 코스피 1%, 코스닥 2% 또는 10억원어치 이상 갖고 있으면 대주주로 간주해 주식을 사고팔 때 양도세를 내야 한다. 내년 4월 1일 양도세 부과분(올해 말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부터 이 기준 금액이 3억원으로 낮아진다. 지분율(코스피 1%, 코스닥 2%)은 변함이 없다.
대주주 기준이 종목당 10억원일 땐 적용 받는 사람수가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진 건 정부가 세법을 개정하면서다. 대주주 기준 금액을 3억원으로 대폭 낮추면서 적용 대상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가족 합산 규정은 기름을 부었다. 동학개미란 용어가 생겨날 만큼 개인의 주식 투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가족 보유분에 따라 대주주 양도세를 새로 물게 생겨서다.
본인 보유 주식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소유 주식까지 합쳐 3억원이 넘으면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가 된다. 예를 들어 본인이 A사 주식은 1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어도 부모가 1억원, 조부모가 1억원 각각 A사 주식을 갖고 있다면 대주주에 포함돼 양도세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대한 동학개미의 반발은 컸다. 지난달 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친가ㆍ외가 조부모, 부모, 배우자, 자녀, 손자 보유 주식까지 포함해 대주주 기준을 3억으로 삼는 것은 현대판 연좌제로 위헌”이란 내용의 글에 4일 현재 21만 명이 동의했다. 정부 책임자 답변 기준인 참여(추천) 인원 20만 명을 넘어섰다.
정치권도 움직였다.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주주 기준을 3억원으로 삼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라며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직계존비속 보유분까지 합산하는 지점이 가장 불합리해 보인다”고 밝혔다.
정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주주요건 시행 유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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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ㆍ정은 이날 비공개 정책회의를 열어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에 대해 논의했다. 여당의 요구에 따라 기재부는 가족 합산 규정을 바꾸는 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시행 시기를 늦추는 방안도 내부 검토 중이다. 하지만 대주주 기준 3억원 안은 고수했다. 기재부 당국자는 “회의 과정에서 대주주 기준 3억원의 유지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대주주 기준은 세법이 아닌 시행령 사항이다. 기재부 결정만 내려지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의 국무회의만으로 ‘속전속결’ 개정ㆍ시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남았다. 기재부가 가족 합산 규정은 바꾸고 시행 시점은 늦춰도, 3억원 기준은 못 바꾼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대주주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6~7월에 빚어진 금융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혼란의 닮은꼴이다. 당시 기재부는 ▶소액투자자에 대한 주식 양도세를 신설하면서 ▶증권거래세는 소폭 인하할 뿐 유지하고 ▶국내 주식형 펀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등 내용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개인투자자가 크게 반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7일 “개편안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발언하며 동학개미의 손을 들어줬다. 기재부는 결국 공제액과 원천징수 방식 등 세부안을 손질하며 한발 물러서야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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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달여 만에 대주주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빚어지면서, 주식 관련 세제를 둘러싼 ‘정부 안 발표→개인투자자 반발→정치권 개입→정부 안 수정’ 과정이 반복될 상황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10억원인 상황에서 주식 대주주 기준이 가족 합산 3억원인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대주주 기준이 10억원일 때도 11월부터 양도세 회피 목적의 매도가 몰렸는데, 기준이 3억원으로 바뀜에 따라 이런 매도 쏠림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관련 제도 손질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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