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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가 왜 거기서 나와?” 강남 땅 1m 아래에 대용량 저장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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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현장 땅속 탄소 농도 측정… 가로세로 1m당 평균10kg 함유

개발 前 논에서 형성돼 저장된 것… 천연 탄소저장고 해안습지-북극

댐-제방 건설로 퇴적층 줄어들고 북극권 연쇄 산불로 탄소 대량 방출

“지구온도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

동아일보

급격한 도시화를 겪은 지역의 지하에는 그동안 존재를 잊고 있던 다량의 탄소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배지환 서울대 연구원이 2017년 서울 강남 일대 재개발 지역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왼쪽 사진). 7월 시베리아의 숲을 태우고 있는 산불. 올해 북극권 산불이 크게 늘어난 원인으로는 지하 토탄층에 붙은 불에 의한 ‘잔존 산불’이 꼽히고 있다. 배지환 연구원·그린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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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조경학전공 연구원은 2016년 서울 강남의 재건축 현장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걸음을 멈췄다. 드릴로 지하를 뚫는 과정에서 수 m 깊이의 땅속 토양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을 본 것이다. 도심의 땅속에 사는 생명체에서 유래한 탄소(유기탄소) 농도를 통해 지하 생태계 순환을 연구하는 배 연구원은 드물게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 지하 1m 이상의 깊은 토양의 탄소 농도를 측정한 연구는 거의 없다.

배 연구원은 공사 담당자를 설득한 끝에 얻어낸 토양 시료에서 탄소 농도를 분석하고 크게 놀랐다. 1∼3m 깊이의 땅속에서 대단히 높은 유기탄소 농도가 측정됐다. 류영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조경학전공 교수는 “도시에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포장된 층(불투수층) 아래는 그동안 탄소가 거의 없다고 여겨져 왔는데 생각보다 유기탄소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탄소정책과 도시정책을 새로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지하에 막대한 유기탄소… 재개발 시 유의해야

류 교수와 배 연구원은 2016∼2018년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총 세 곳에서 52개의 시추 시료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이들 지역 지하 1∼3m 지점에 50년 전 도시 개발이 이뤄지기 전에 형성된 다량의 유기탄소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작은 식탁만 한 면적인 가로세로 1m 불투수층 아래 심토에 들어 있는 탄소는 녹지 아래와 비슷한 평균 10kg 이상이었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경관 및 도시계획’ 12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연구팀은 과거 항공 영상과 탄소 및 질소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탄소층은 1970년대에 도시 개발이 이뤄지기 전 이곳을 차지하던 논에서 쌓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배 연구원은 “강남 개발 전인 1975년 서울시 내 경지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23배인 6776ha였다”며 “서울 아래 심토층에 과거 농경 활동으로 67만7600t의 유기탄소가 묻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느티나무 묘목을 1254만 그루 심어 굵기(흉고 직경)가 15cm가 될 때까지 키워야 겨우 흡수할 수 있는 양이다.

연구팀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지하에 매장된 유기탄소가 대기로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 전 세계에 도시 개발 등으로 형성된 불투수층 면적은 58만 ㎢에 이른다. 프랑스 전체 면적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특히 대도시는 삼각주 등 탄소가 풍부한 비옥한 곳에 건설된 경우가 많다. 류 교수는 “개발 등으로 유기탄소가 풍부한 심토를 캐낸 경우 도시 내에서만 이동시키고 최대한 재활용해야 저장됐던 탄소의 이동 또는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안습지, 북극 토탄층 탄소 배출 비상

각종 퇴적물이 쌓인 비옥한 해안습지와 북극 지역의 영구동토층도 다량의 탄소를 가둬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호주 울런공대 연구팀은 논문에서 “습지가 탄소를 가두는 속도가 두 배로 늘면 매년 500만 t의 탄소가 추가로 땅속에 저장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며 “대기 중 탄소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탄소 500만 t은 느티나무 묘목 9250만 그루를 심어야 제거할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강 곳곳에 지어진 댐과 제방이 해안의 퇴적물 양을 줄여 해안습지를 위협하면서 탄소배출량이 늘고 있다. 중국 베이징대 연구팀이 올해 1월 ‘사이언스 불러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193대 강에서 퇴적된 퇴적물의 양은 최근 5∼10년 새 약 21% 감소했다. 특히 황허강이나 양쯔강, 인더스강 등 아시아 지역의 강에서는 퇴적물의 양이 극단적으로 줄었다.

북극권 토탄층에서도 지난해 크게 증가한 산불 이후 막대한 탄소를 방출하고 있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국제 대기오염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올해 북극권에서 1∼8월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2억4400만 t이다. 이집트나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가 한 해 내뿜는 이산화탄소 양 이상으로, 역대 최악이었다는 지난해 같은 기간 배출된 탄소량보다 35% 많다.

전해 발생한 산불이나 들불이 꺼진 뒤 유기탄소가 가득한 지하 토탄층을 태우며 숨어 있다가 이듬해 불씨가 지표로 재확산하며 산불로 번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잔존 산불’ 또는 ‘좀비 산불’이라고 불린다. 도로시 피티트 NASA 고다드연구소 연구원은 “토탄층 아래까지 타면서 막대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방출돼 지구 온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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