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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의도적’ 총격살해·주검훼손…남북관계 파장 북 후속 조처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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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미칠 파장

북한군 방독면·방호복 차림 접근

‘코로나 차단’ 이유로 만행 추정

지난 7월 탈북민 월북사건 문책에

책임 회피성 과잉대응 측면 있어

우발적이기보다 의도적인 행위로

‘금강산 관광객 피살’보다 심각

최고 지도부 판단인지는 미확인

“북쪽 설명 들어봐야 파장 가늠”


한겨레

박재민 국방부 차관(가운데)이 24일 국회 본청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을 방문해 북한 해역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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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단절 상황인 남북관계에 초대형 돌발 악재가 터졌다. 남쪽의 격앙된 여론과 북쪽 특유의 경직된 맞대응이 뒤엉키면, 자칫 남북관계가 통제 불가능한 악순환의 수렁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24일 군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북한군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상에 표류하던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을 “해군 계통의 지시”를 받아 “북한군 단속정이 총격”한 뒤 “해상에서 시신에 기름을 뿌리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군의 행위를 우발적이기보다 “의도적으로 본다”고 군 관계자는 짚었다.

북한군의 ‘총격 살해’와 ‘주검 소각·훼손’은 일단은 ‘코로나19 차단’이 이유이자 명분이었으리라 추정된다. 군 관계자의 설명을 보면, 22일 오후 3시30분께 “부유물에 탑승한 기진맥진한 상태의 실종자”를 최초 발견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은 실종자를 바로 구조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방독면을 착용한 채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고는 “실종자가 (바다에서) 유실되지 않게 조처”를 취했다. 이후 북한군 단속정이 총격 살해한 뒤에도 “방독면을 착용하고 방호복을 입은 북한군이 시신에 접근해 (해상에서) 불태운 정황이 포착”됐다. 반복 등장하는 ‘방독면’과 ‘방호복’은 코로나19 감염 회피 장치로 보인다.

앞서 지난 7월19일 한 탈북민이 강화도에서 헤엄쳐 개성 쪽으로 월북했을 때, 북쪽은 “개성시에서 악성비루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귀향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했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건 발생 엿새 만인 7월25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개성시를 “완전 봉쇄”하고 “사건 발생에 책임이 있는 부대에 엄중한 처벌” 조처를 지시했다. 이유가 어떻든 북한군의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는, ‘개성 사건’ 문책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책임 회피성 과잉 대응’의 측면이 강해 보인다.

북한군의 이런 행위에 최고지도부의 정무적 판단이 깔려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김정은 위원장은 6월23일 당중앙군사위 예비회의에서 대북전단을 문제삼은 ‘대남 군사행동 계획’의 “보류”를 지시한 뒤,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상황 악화 조처를 취하지 않아왔다.

북한군의 ‘총격 살해’와 ‘주검 소각·훼손’은 사정이 어떻든 ‘의도성’이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보다 더 악성이다. 박씨는 2008년 7월11일 새벽 4시50분께 해변을 산책하다 남쪽 관광객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섰다는 이유로 인민군 경계병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북쪽은 사건 발생 당일 남쪽에 사건 개요를 전했고, 이후 “유감”을 표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남북 공동 현장 진상조사 요구는 거부했다. 박씨 피살 사건으로 1998년 이후 150만명 가까운 남쪽 사람이 다녀온 금강산관광사업은 중단됐고, 사건 발생 12년이 지난 지금도 재개되지 않고 있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돌발 악재는 남북관계에서 어디로 튈지 모를 공이다.

정부는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쪽에 “해명”과 “사과”,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조처”를 주문했다. 일단 ‘공동 진상조사’는 제안하지 않았다. 북쪽이 남쪽의 이런 요구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느냐에 이 사건이 70년 분단사에 또하나의 일과성 비극으로 남을지, 남북관계에 태풍을 몰고올 나비의 날갯짓이 될지가 달려 있다. 남북관계의 파란만장을 겪은 이들은 “일단 북쪽이 뭐라 설명하는지 들어봐야 파장을 가늠할 수 있겠다”며 더는 언급을 피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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