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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베트남 출신 美국민, "우리는 트럼프가 좋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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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07]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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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미국 대선도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은 멜팅포트(Melting Pot)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죠. 그래서 다수의 아시안 출신 미국 국민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아시안 관련 단체가 1569명의 아시아계 미국인 유권자 참여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조사를 했습니다. 11월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중 누구를 지지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소수민족들은 트럼프보다 바이든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이민자 비자 정책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요.

통계치를 보니 인디언 피를 이어받은 미국 국민은 트럼프 지지 28%, 바이든 지지 65%였습니다. 잘 모른다는 6%였군요. 일본 출신 역시 바이든 지지율이 61%에 달했습니다. 트럼프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간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바이든에 대한 선호가 더 높았습니다. 트럼프 지지율은 24%에 불과했고 잘 모른다는 대답을 내놓은 부동층은 14%였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역시 바이든 지지율이 57%, 트럼프 지지율은 26%에 불과했습니다. 16%는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어요. 중국 출신 역시 바이든 지지율이 56%로 높았습니다. 트럼프만큼 화끈한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대통령을 뽑은 필리핀 출신 미국인의 생각은 어떨까요. 트럼프 지지율이 다른 아시안 출신 미국 유권자 지지율보다 좀 높긴 하지만 그래도 34%에 불과합니다. 바이든 지지율은 52%고요.

그런데 유일하게 베트남 출신 미국 유권자들 생각만 다릅니다. 트럼프 지지율이 48%에 달해 바이든(36%)을 뛰어넘었습니다. 왜 베트남 출신 미국 국민은 바이든보다 트럼프를 더 좋아하는 것일까요?

자료를 찾아봤지만 설문을 심도 있게 분석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미·북정상회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간 바로 그 회담입니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물밑에서 미·북정상회담 유치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메가톤급 쇼를 베트남 국경 안에서 열고 싶은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중부지역 관광도시인 다낭과 수도 하노이 복수 후보를 미는 유치전 끝에 결국 하노이로 회담 장소가 낙점되었습니다.

물론 회담 자체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베트남은 이를 통해 막대한 홍보 효과를 거뒀습니다. 금전으로는 환산이 안되는 수준입니다. 베트남은 세계적인 이목이 몰린 회담을 열 수 있는 보안이 튼튼한 나라라는 점을 대내외에 알리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미국 국민 입장에서 베트남은 과거 베트남전쟁에서 쓰린 아픔을 겪고 돌아선 '과거의 나라'였습니다. 히피들이 거리로 나와 반전시위를 벌이고 LSD에 취한 뮤지션들이 사이키델릭 음악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합창한 희뿌연한 기억만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미국인들은 자국 대통령이 베트남 땅에 건너가 잘 정비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광경을 TV로 지켜보았습니다. 이는 중국과 지속적인 영토분쟁을 벌인 베트남이 사실상 '친미국가'를 선언한 이벤트로 분석될 만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맘먹고 벌이는 쇼에 기꺼이 무대를 내주는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국민 감정이 좋지 않은 옆나라 중국보다 미국에 찰싹 붙어 경제성장 그래프를 가파르게 만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럴 동력을 찾지 못했지만 마침 트럼프와 이해관계가 맞아 글로벌 이벤트를 베트남에 유치하는 승부수를 던져 적중한 것입니다. 베트남 정부가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을 유치한 것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 하나를 연 것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베트남을 주목하는 미국, 유럽의 자본을 상대로 "자, 봐라 베트남은 이렇게 글로벌하고 열려 있는 나라다. 안심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투자해라"고 선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베트남 출신 미국 국민은 아마도 이런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트남 출신에서만 유독 바이든보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베트남과 친한 관계를 맺으려는 미국'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열렸던 저 이벤트에 대한 지지가 트럼프 지지율로 연결됐다는 뜻입니다.

사실 바이든이 새로 대통령이 되더라도 중국과 인접한 국가와 연합해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는 미국의 노력은 지속될 것입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한국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나라입니다. 돈냄새를 좇아 뭐든지 하겠다는 실용주의적 자세가 국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흥미진진합니다. '중국이 싫고 미국이 좋다'는 베트남 속내의 일부를 읽은 것 같아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하노이 드리머]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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