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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긴즈버그 후임 “지체 없이” 임명하겠단 트럼프…미 대선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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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법관 이념지형 현재까지 보수 5, 진보 4

트럼프가 임명하면 보수 6으로 더 기울어져

정치권·시민사회, 대선 앞 첨예한 전쟁 돌입

트럼프 “우리의 의무…다음주에 후보 지명”

바이든 “새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 골라야”

공화당 내부 반대의견 있어 내부 표단속 변수


한겨레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볼티모어의 영어 교사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추모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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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꼽혀온 연방대법원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병으로 숨지면서 미국 사회가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보수 우위의 미 대법원 이념지형을 더 강화하느냐, 저지하느냐 역사적 싸움이 시작됐다. 후임 대법관 임명 문제 자체가 40여일 남은 대선 판을 뒤흔들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종신직인 미 대법원 9명의 대법관은 긴즈버그를 포함한 진보 4명과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보수 5명의 구도로 유지돼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의 빈 자리를 자신의 임기(2021년 1월20일) 안에 보수 대법관으로 서둘러 채우려 하고, 민주당은 대선(11월3일) 이후로 넘겨야 한다고 맞서며 전쟁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엇빌에서 열린 유세에서 “다음 주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 될 것이다. 아주 재능있고 훌륭한 여성”이라고 말해, 이미 마음 속에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사실, 매우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트위터에도 대법관 임명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서 “우리는 이 의무가 있다. 지체 없이!”라고 속도전 의지를 밝혔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상원에서 표결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대법관은 대통령의 후보 지명과 상원 인준 청문회 및 표결 절차를 거치며, 지명부터 공식 임명까지 통상 70일이 걸린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 53명, 민주당 및 무소속 47명으로 공화당이 다수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1월20일, 상원 임기는 1월3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연내에 속도를 내면 미 대법원을 보수 6, 진보 3명으로 보수로 확 기울어진 구도로 강화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선이 불과 40여일 남은 만큼, 새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들에게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대통령이 대법관을 골라서 상원이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특히 4년 전의 전례를 들어 공화당을 비난하고 있다. 2016년 3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관 후보에 진보 성향의 에릭 갈랜드를 지명했으나, 당시 상원 다수당이던 공화당은 그해 대선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의회에서의 인준 절차를 거부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뒤 닐 고서치 대법관을 지명해 임명에 성공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공화당의 매코넬 원내대표가 2016년에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긴즈버그 후임 인선은 대선 뒤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긴즈버그가 숨지기 며칠 전 손녀에게 “나의 가장 강렬한 소망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교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점을 들어,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임 대법관 지명 문제는 코로나19 대응과 인종차별 문제가 지배해온 미 대선 판의 새로운 변수다. 대법관 구성 변화는 여성, 성소수자, 이민, 낙태, 총기 소유, 환경, 건강보험 등 미국 사회의 민감한 의제들의 방향성과 연결되는 첨예한 문제다. 이 때문에 대법관 후임 인선을 언제, 누가, 어떤 사람으로 진행하느냐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층이 각각 결집하며 세를 모으는 매개가 될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긴즈버그 사망 뒤 공화당과 민주당을 각각 지지하는 외곽 단체들이 새 대법관 임명 찬성과 반대 운동에 나섰다고 전했다.

공화당 안에서는 대선 전에 후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상원 인준 표결까지 마치자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새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공화당이 의회에서 인준 청문회를 진행하되, 인준 표결은 대선 뒤로 넘기는 게 좋다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등 지난 4년 국정운영에 실망한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대법관 문제가 대선 투표율을 높이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서치와 브렛 캐버노에 이어 이번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세 번째 대법관 임명 기회다.

대법관 문제는 민주당 지지층 또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똘똘 뭉치면 트럼프 대통령의 새 대법관 임명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온다. <액시오스>는 긴즈버그 사망 소식 직후 민주당의 한 인사가 “재앙”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변수는 오히려 민주당보다 공화당 내부의 반대 기류다.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워온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새 대법관은 11월 대선에서 당선되는 대통령이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콜린스 외에도 리사 머코스키 등 공화당 상원의원 3~4명 정도가 대선 전 대법관 인선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공화당도 내부 표단속이 급한 처지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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