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아베 후계 스가①]가업 잇기 싫어 가출한 딸기농장주 아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친 뜻 거슬러 학비 지원 못받아…'흙수저' 신화로 부풀려져

대학선배 소개로 의원 비서 일하며 정계 입문…대북 강경론자

뉴스1

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자민당 총재 <자료사진> © 로이터=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일본 집권 자민당의 새 총재로서 '포스트 아베'(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후임)가 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8년 가까이 일본 정부 대변인이자 아베 총리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과 정치권에선 그를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함께 아베 내각을 지탱해온 핵심 인사로 꼽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택한 일본에선 관례상 원내 제1당 대표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스가 총재는 오는 1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일본의 제99대 총리로 공식 지명된다.

뉴스1

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자민당 총재의 고향 친구 유리 마사시가 공개한 15세 때 스가 총재(왼쪽) 사진 © 로이터=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부친에 반항해 무작정 상경…'흙수저' 미담으로 와전

자민당의 8선 중의원(하원) 의원인 스가 총재는 1948년 아키타(秋田)현 출신으로 호세이(法政)대 법학부 졸업 뒤인 75년 대학 선배의 소개로 가나가와(神奈川)현이 지역구였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郞) 당시 자민당 중의원 의원 비서로 취직하면서 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딸기농장을 경영하던 부친은 2남2녀 중 장남인 스가 총재에게 농업대 진학을 권유지만, 그는 "도쿄에 가겠다"며 고등학교 졸업 뒤 무작정 상경했고 이후 2년간 공장과 시장·음식점 등의 일을 하다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언론들은 앞서 스가 총재 본인의 과거 인터뷰 내용 등을 근거로 그가 "낮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밤엔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부" 등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라고 보도해왔으나 이는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다.

최근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이 스가 총재 친인척과 아키타현 현지 주민 등을 상대로 취재·확인한 데 따르면 스가 총재는 호세이대 법학부 제1부(주간부) 정치학과를 정식으로 졸업했고, 가업을 이으란 부친의 뜻을 어기고 상경했기 때문에 학비 등을 지원받지 못했다.

뉴스1

스가 요사히데 신임 일본 자민당 총재(왼쪽)와 아베 신조 총리 <자료사진> © AFP=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8선 지역구' 가나가와현서 국회의원 비서로 정계입문

스가 총재의 현 국회의원 지역구는 오코노기 전 의원 밑에서 일을 배웠던 가나가와현이다. 그는 1987년 이후 2차례 이 지역 시의원(요코하마(橫兵)에 당선됐고, 96년부턴 중의원 의원을 맡고 있다.

아베 총리와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북한 방문 직후 납북자 문제와 관련한 일본 내 반북(反北) 여론이 고조되면서 가까워졌다. 아베 총리는 이때 관방 부장관(차관)을 맡아 고이즈미의 방북에 동행한 뒤 대북 강경론에 앞장서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이는 2006년과 12년 등 그의 2차례 집권을 이끌어낸 주요 동력이 됐다.

당시 아베와 의기투합했던 스가 총재는 아베 총리의 첫 집권기엔 총무상으로 발탁됐고, 재집권 뒤엔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 기록을 세웠다. 또 2018년 10월 개각에서 납치문제 담당상을 겸임하게 된 스가 총재는 작년 5월 일본 정부 후원 아래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관방장관으로선 이례적으로 미국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뉴스1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작년 4월1일 기자회견에서 나루히토 일왕 시대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베와는 납북자 문제 등 '대북 강경론' 연결고리로 가까워져

스가 총재가 여권 내 '포스트 아베' 후보군으로 거명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4월 나루히토(德仁) 일왕 시대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직접 발표한 기자회견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스가 총재는 이후 10대 청소년들로부터 '레이와 오지상'(令和おじさん·레이와 아저씨)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스가 총재는 지난달 28일 아베 총리가 건강상 이유(궤양성 대장염 재발)로 중도 사임 의사를 표명하던 날까지만 해도 '포스트 아베' 도전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다"며 무심한 반응을 보였으나, 이후 자민당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과의 접촉 끝에 총재직 도전 의사를 굳혔다.

스가 총재는 자민당 내에서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은 이른바 '무파벌' 인사로 분류되지만 지난 2일 출마선언에 즈음해 니카이파를 시작으로 당내 7대 파벌 중 호소다(細田)·아소(麻生)·다케시타(竹下)·이시하라(石原)파 등 5곳이 앞 다퉈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약 '대세론'이 형성됐고 결국 당 총재 경선 승리로 이어졌다.
ys4174@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