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부장 이원형)는 11일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이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제한 행위에 해당하지만,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소송은 페이스북이 2016년 12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주요 이동통신사들의 접속 경로를 해외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당시 통신사에 사전 고지를 하지 않고 접속 경로를 미국, 홍콩 등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대역폭이 좁아지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해 페이스북 속도가 느려지자 이용자들은 통신사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방통위는 2018년 3월 "페이스북이 정당한 사유 없이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이용자들의 접속 속도를 떨어뜨렸다"며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이 통신사와의 망 이용료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의로 접속 경로를 변경한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통신사들이 과도한 망 사용료를 요구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며 같은 해 5월 소송을 냈다.
11일 서울고법은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이 전기통신사업버상 이용제한 행위에 해당은 하지만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셔터스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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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이 접속 경로를 변경한 것은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일 뿐,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방통위는 항소했지만 이번에도 패소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는 다르게 페이스북이 접속 경로를 변경한 행위 자체는 이용 제한 행위로 판단했다. 이용자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제재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일부 동영상 콘텐트를 이용할 때 속도 저하로 불편함이 있었지만, SNS의 본질적인 서비스인 게시물 작성, 메시지 전송 등을 처리할 땐 평상시처럼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방통위 과징금 부과에 대해서도 "재량권을 남용했다"며 전부 취소 판결했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과징금 부과 근거조항인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42조 1항) 시행 전 발생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처분의 근거 법령도 없이, 50을 위반했는데 100으로 처분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송을 정보통신(IT)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망 품질에 대한 책임을 콘텐트제공자(CP)도 져야 하는지 아닌지를 놓고 현재 CP와 ISP(인터넷제공자)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9일 "페이스북·넷플릭스 등 CP들도 서비스 안정성에 대한 의무를 져야 한다"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해외 사업자들이 망 이용료를 내지 않아 '무임승차'를 한다는 지적에 정부가 일명 '넷플릭스 규제법'을 내놓으면서 CP들에게 망 품질 유지에 대한 책임을 부과한 것이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현재 정부의 방향성과 다소 결이 다르다. 재판부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 품질은 기본적으로 ISP가 관리·통제할 영역이지 CP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페이스북과 같은 CP에 대한 법적 규제를 넓히면 CP의 정보제공 기능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이 재판 결과가 또 다른 주요 CP인 넷플릭스가 진행 중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넷플릭스는 지난 4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법원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다. 다음 달 30일에 첫 변론기일이 열린다.
방통위는 이번 판결에 대해 "판결문을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당시 피해를 본 이용자 입장에서 재판부가 판단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용자를 차별하거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게 관련 법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은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한국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선영·김정민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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