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투자원금을 전액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 권고를 판매사들이 수용했다. 금융권에서는 부실펀드 처리 과정에서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우리·하나은행·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대우 등 은행, 증권사들은 27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분조위 결정을 수용하기로 의결했다. 판매사들은 이날 결정에 대해 “법률 검토 끝에 소비자 보호와 신뢰회복,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분조위 권고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하나은행은 자산운용사인 라임과 스왑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가 라임무역금융펀드의 부실을 은폐하고 판매했다는 금감원 조사 결과를 인용, 이들을 상대로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판매사들이 투자금 전액 환불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650억원, 364억원, 신한금융투자와 미래에셋대우는 425억원, 91억원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게 됐다.
이들의 분조위 결정 수용은 일정 정도 예상돼왔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5일 임원회의에서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와 경영실태평가에서 분조위 조정 결정 수락 등 소비자보호 노력이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 게 판매사에게 적지 않은 압박이 된 까닭이다.
그러나 이사회에서 진통이 심했다. 이사회는 투자금 98% 손실 책임에 관한 운용사와 판매사 과실 비율, 투자자 책임 원칙 등이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투자금을 물어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배임 이슈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우리은행 경영진은 복수의 법무법인으로부터 보상을 하더라도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받고 이사들에게 설명했지만 이사들은 별도로 법률 자문을 구하는 등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일이 좋지 않은 전례가 될 것이라고 본다. 당장 라임자산운용의 다른 펀드들과 옵티머스 펀드,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아름드리자산운용 펀드, 디스커버리펀드, 팝펀딩펀드,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등 부실 사모펀드들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기다리고 있다. 판매사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판매한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13개 사모펀드 환매중단액은 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이 이번 주부터 사모펀드 1만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기 때문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밝혀진 주요 은행들의 부실 펀드 규모는 △우리은행 4742억원 △신한은행 3940억원 △하나은행 3555억원 △IBK기업은행 1230억원 등이다. 지방은행인 부산은행과 경남은행도 각각 527억원, 276억원 규모 라임 펀드 환매가 중단됐다.
이중 신한은행이 판매한 라임 펀드는 CI(크레딧인슈어드) 펀드로 이번 분쟁조정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시차만 있을 뿐 상황은 비슷하다. 금감원은 환매 연기된 라임 펀드 전반을 살피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 일로 검찰 수사선상에도 올랐다. 금융권에선 향후 신한은행이 우리·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울며 겨자먹기’로 금감원의 배상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신한은행은 현재 손실액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고객 보상에 문을 열어둔 상태다.
그렇지만 금융권은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 명분 아래 판매사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묻는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은행 등 판매사들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피해액의 상당액을 돌려줘 이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면서 당국은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투자자들에게 ‘원금 보전’이라는 오해를 부추기고 시장 왜곡과 위축을 불러오게 된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판매사에도 책임이 있지만 100%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며 “은행에서 판매한 부실 사모펀드 피해액만 1조원대인데 무역금융펀드 사례처럼 손실액을 은행에 떠넘길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했다.
금감원은 판매사들의 결정을 반겼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사들이 투자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아 다행”이라며 “이번 결정이 각종 사모펀드 사태로 잃어버린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산 기자 san@mt.co.kr, 김평화 기자 peace@., 양성희 기자 yang@,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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