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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국 흑인 사망

흑인은 '레드존', 백인은 '그린존'…인종차별 정책이 부른 지역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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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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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지역별 온도를 색깔로 표시했다. ‘그린존’은 시원하지만, ‘레드존’은 더 덥다. 뉴욕타임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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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길핀 지역은 주변보다 여름 기온이 평균 2.7도 정도 높다. 여름이면 콘크리트가 거리에 열기를 뿜어내고, 녹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흑인 거주촌이기도 하다. 전체 인구 2600여명 중 흑인이 96.1%이고, 백인은 0.8%에 그친다. 흑인들은 주로 냉방시설이 부족한 저렴한 공공 임대주택에 산다.

뉴욕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리치먼드뿐 아니라, 볼티모어·달라스·덴버·마이애미·포틀랜드·뉴욕과 같은 도시 108곳에서 가난하거나 비백인이 사는 동네들의 여름 온도가 부유한 백인 동네보다 평균 2.6도 더 높다고 보도했다. ‘그린존’으로 불리는 백인 거주지와는 달리, ‘레드존’인 흑인 거주지는 녹지나 공원이 적고, 도로에 단열 효과가 낮은 포장재를 쓰기 때문이다.

길핀 주민인 스파클 베로니카 테일러(40)는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더위를 피해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마련해주려고 리치먼드를 가로질러 부자 동네에 있는 공원까지 30분을 걸어야 했다. 테일러는 “녹초가 돼서 공원에 도착하면, 그 공간이 얼마나 푸르른지를 보고 충격받는다”면서 “동네마다 녹지가 많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확연히 차이난다”고 말했다.

리치먼드에선 32.2도가 넘는 무더위가 평균 43일 정도 지속되고 있다. 2089년까지 무더위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더위는 한해 1만2000명의 생명을 앗아간다. 심정지 환자나 천식같은 호흡기 질환 입원자가 늘어날 수 있다. 폭염 기간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사망 위험이 2.5% 증가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지역마다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온열병으로 인근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람들은 주로 ‘레드존’에 사는 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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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녹지 비율을 색깔로 표시했다. ‘그린존’은 녹지가 많지만, ‘레드존’에선 녹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뉴욕타임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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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에겐 ‘최고’ 등급, 흑인에겐 ‘위험’ 등급

미국 정부는 1930년대 적극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펼쳐 흑인과 백인 거주지를 갈라놓았다. 주거 환경을 4등급으로 평가하면서 백인 거주지에는 ‘최고’ 등급을, 흑인 거주지에는 ‘위험’ 등급을 매겼다. 당시 리치먼드 감정평가서는 ‘흑인 가족들이 가끔 걸어다닌다’는 이유로 특정 지역에 하위 등급을 매겼다. 어떤 지역은 “백인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흑인 지역인 8구역에 있고, 그 주변에 흑인들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등급이 깎였다.

‘위험’ 등급을 받은 흑인들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에서 백인보다 고금리를 내며 차별받아왔다. 2017년 백인의 71.9%가 집을 샀지만, 흑인은 41.8%만 집을 가졌다. 흑인과 백인의 주택 보유 격차는 2010년 28.1%에서 2017년 30.1%로 커졌다. 주거 격차도 커졌다. 백인들은 나무가 늘어선 보도와 공원을 위해 시 정부에 로비할 힘이 있었다. 흑인 구역은 슬럼화됐다. 흑인 거주지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1970년대에야 법으로 금지됐으나, ‘레드존’과 ‘그린존’ 구분은 수십년이 지금 지금도 남아 있다.

특히 리치먼드에서는 1958년 건설된 고속도로가 중심부를 두 동강 냈다. 주정부가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고속도로를 지으면서 흑인 수천명의 집이 철거됐다. 남은 길핀 흑인들은 고립됐다. 지역보건요원인 쉐렐 톰슨은 길핀 주민이 천식, 당뇨병, 혈압을 앓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데, 인근 고속도로에서 나오는 매연까지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길핀 근처에 병원이나 식료품점이 없고 신선한 농산물을 파는 가게도 없다”면서 “건강한 식품을 찾으려면 최소한 버스 두 대를 타야 하고, 천식을 치료하려 해도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반문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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