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취임식 당시 람 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며 웃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317]
■케임브리지대 학생들, 작년부터 펠로십 박탈 요구
6월 말 홍콩보안법 발효 후 국제적 지탄을 받고 있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모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명예 펠로십을 박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람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케임브리지대 명예 펠로십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형식은 자발적 포기이지만 이미 지난 7월 케임브리지대에서 인권탄압 논란 등을 들며 펠로십 박탈 가능성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굴욕적인 발표다.
그녀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케임브리지대 울프슨 칼리지와 나의 인연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다"는 말로 펠로십 포기를 선언했다.
모든 문제의 발단이 홍콩보안법에서 비롯됐는데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케임브리지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논리 전개다.
홍콩 완차이 출생인 람 장관은 홍콩대 졸업 후 1980년대 국비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대 울프슨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지금의 남편인 시오푸 람을 만난 것도 이곳이었다. 앞서 람 장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중국 국영 CGTN과 인터뷰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금융 제재 대상으로 자신이 오른 것과 관련해 신용카드 서비스 이용에 일부 어려움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모교이자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케임브리지대 명예 펠로십 상실은 미국발 제재 이상으로 람 장관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후배인 케임브리지대 학생들은 지난해 홍콩 시위 사태 때부터 람 장관을 살인자로 지칭하며 펠로십 박탈을 요구해왔다.
케임브리지대가 지난달 현직 행정수반인 그녀를 상대로 인권탄압 논란에 대한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 같은 학내 비판이 장기적으로 누적돼 왔기 때문이다.
캐리 람 장관이 최근 모교인 케임브리지대 명예 펠로십 포기를 언급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함께 게재한 사진. 과거 케임브리지대 캠퍼스 안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캐리 람 페이스북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캐리 람 재신임 中, 보안법 '총알받이' 효과 노린 듯
친중파 정치인인 캐리 람은 2017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전체 선거인단 1194표 가운데 777표를 얻어 홍콩 최초 여성 행정장관 기록을 세웠다.
행정장관의 임기는 5년으로 그녀는 지난해 홍콩 시위 사태 여파 속 치러진 11월 구의회 선거에서 친중파가 대패하면서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에 몰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중국 시진핑 지도부가 람 장관을 경질하고 직무대행 체제로 홍콩 상황을 관리할 가능성을 보도해왔다.
2015년과 2019년 구의회 선거 결과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 2019년 11월 선거에서 친중파(붉은색) 후보들이 반중 범민주파(노란색)에 대패하면서 4년만에 정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사진=트위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구의회 선거 참패 다음달인 12월 베이징에서 그녀를 만나 확고한 재신임 의지를 피력했다. 람 장관의 후임으로 헨리 탕(唐英年), 노먼 찬 등 전·현직 고위 관료들이 거론되던 홍콩 내 분위기와 정반대 결과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홍콩보안법 발효와 이후 람 장관의 공격적 행보를 보면 시진핑 지도부의 '재신임' 결정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본토에서 만든 초헌법적 법안을 홍콩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비난을 돌릴 '총알받이'가 필요했고, 최근 미국의 금융제재 조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캐리 람 장관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보안법 종착역은 '직선제 무력화'
아울러 홍콩에서 자행되는 정부 통제를 보면 시진핑 지도부의 홍콩보안법 설계 의도가 민주진영 탄압을 넘어 '직선제 저지'로 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상 검증을 벌여 범민주(반중)진영 후보들의 입후보 자격을 박탈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람 장관은 이도 모자라 코로나19 확산을 명분으로 오는 9월 치러질 예정이었던 입법회 선거를 1년 연기시키는 초법적 결정을 내렸다.
홍콩 시위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직선제'는 홍콩 행정장관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게 해달라는 요구다.
현 선거 체제는 국민을 대리하는 1200명의 선거인단이 직능별로 선출돼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다.
지난해 11월 구의회 선거 참패 직전 중국 상하이로 달려간 캐리 람 장관이 시진핑 국가 주석과 면담하는 모습. 당시 시 주석은 람 장관에게 "홍콩의 풍파가 5개월 째 지속되고 있다"며 폭력과 혼란을 제압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간선제 시스템에서 선거인단이 늘 중국의 영향력하에 있는 홍콩 기업인과 정치인 위주로 구성되다보니 홍콩 행정장관이 자국민보다 중국 지도부에 더 충성하는 구조가 고착화했다. 심지어 1200명의 홍콩 선거인단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명하는 몫(60명)도 있다.
그런데 작년 11월 구의회 선거에서 반중의 범민주진영이 대승을 거두면서 117명의 선거인단 몫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중국 본토의 입김으로 돌아가는 간선제 구조에서 역사상 최초로 202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반중(反中) 장관'이 선출될 가능성으로 향하고 있다.
작년 말 구의회 선거로 117명의 선거인단을 승자독식 방식으로 쓸어가면서 현재 범민주진영이 확보한 반중 선거인단 수는 442명(37%)이다.
만약 입법회 선거(지역구 35석·직능대표 36석 등 총 70석)가 연기되지 않고 다음달 정상적으로 치러진다면 35개 지역구 의석도 모두 범민주진영이 싹쓸이할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직능대표 35석에서도 범민주진영이 추가로 의석을 확보하며 반중 선거인단 비율이 40%를 넘어가게 된다.
캐리 람 장관과 시진핑 지도부가 9월 입법회 선거 '1년 연기'라는 극약처방을 꺼낸 것은 이처럼 "현 민
심하에서는 그 어떤 선거도 친중진영이 패하는 구조"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직능대표 자리에 들어가는 기업인과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반중 정서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이들은 전통적 친중 성향이지만 최근 그 기류가 확 바뀌고 있다. 홍콩보안법 사태 이후 외국기업들의 홍콩 탈출 러시가 이뤄지면서 비즈니스 환경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중국 본토에서 날아드는 반(反)기업 정치공작도 기업인들의 반중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중요 선거철마다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홍콩 재벌들이 부를 독점하면서 청년세대의 빈곤과 주거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해왔다.
젊은 홍콩인들의 분노를 기업의 탐욕과 연결시켜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친중 출마자들을 측면 지원하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인 것이다.
[이재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