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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레바논 적극 지원 나선 마크롱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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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식민주의 부활'이냐 '순수 온정주의'냐 분분
한국일보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프랑스 대통령이 6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대규모 폭발 참사 현장을 방문해 피해 시민들을 부둥켜 안고 위로하고 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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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참사 현장을 직접 방문한 데 이어 국제 원조 계획도 주도하는 등 사태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지가 역력하다. 해석은 엇갈린다. 프랑스가 과거 26년간 레바논을 위임 통치했던 터라 ‘신(新)식민주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오랜 유대관계에 바탕을 둔 순수한 ‘온정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프랑스의 영향력 확대 움직임이 유혈사태로 번진 레바논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지 주목된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9일(현지시간) “마크롱이 서방 국가원수로는 처음 베이루트 참사 현장을 둘러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방문에 담긴 노림수를 탐색했다. AP통신도 “마크롱은 레바논이 더 이상 프랑스의 보호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고 속내를 의심쩍게 바라봤다. 이들 매체는 그가 내달 1일 정치개혁 진행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재방문하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마크롱의 ‘소매정치’ 이면에는 분명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 그의 광폭 행보를 두고 1920년~1946년 프랑스가 레바논을 통치하던 식민 시절이 재연됐다는 의심이 쏟아졌다. 비판론자들은 마크롱이 직접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새로운 정치개혁”을 조건으로 단 것을 꼬집는다. 사실상 내정간섭이 아니냐는 것이다. AP는 “중동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한 신식민주의”라며 “온라인에서는 마크롱이 ‘21세기 나폴레옹 황제’로 불리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안에서는 비난 여론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는 ‘정치쇼’로 보기도 한다. 쥘리앵 바유 녹색당 대표는 트위터에 “레바논은 무조건 공고해야 한다”면서 마크롱의 간섭을 경계했다. 그는 물론 음모론적 시각을 일축하고 있다. 마크롱은 위임통치 부활 비판에 대해 “프랑스식 해법은 없다”며 “레바논 지도자들을 대신해 대리인으로서 역할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마크롱을 옹호하는 이들은 수백년 된 양국의 유대관계가 프랑스가 사태 해결을 주도하는 배경이라고 주장한다. 두 나라의 인연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프랑스는 오스만제국에 대항해 레바논에서 기독교인들을 보호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위임통치까지 겪으면서 레바논 일부 엘리트들은 여전히 불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어로 수업하는 학교들도 더러 있다. 사태 직후 정부의 무능에 질려 “프랑스에 임시 통치 권한을 주자”는 온라인 청원에 무려 6만명이 서명한 것도 이런 역사적 결속이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베이루트 하이가지안대의 막시밀리안 펠슈 교수는 “프랑스는 중동ㆍ 아프리카의 ‘프랑코폰(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중동전문가도 DW에 “프랑스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해 레바논의 정치적 대소사에 입김이 미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프랑스보다 레바논 내 최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향후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2018년 총선에서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헤즈볼라는 최근 경제 위기와 정쟁, 폭발 참사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지지 기반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여기에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원조를 빌미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더욱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보여 레바논 정국의 앞날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펠슈 교수는 “베이루트 항구를 통제하던 헤즈볼라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기독교인 주거지도 다수 파괴돼 종교간 갈등이 분출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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