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란 성향 이라크·레바논서 장기 반정부 시위로 이란 수세
서방, 지원 앞세워 이란 영향력 축소 시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의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를 받는 이란의 경제난은 심각한 상황이지만 중동에서 이란의 역내 영향력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2010년대 들어 발생한 중동의 무력 분쟁 속에서 강화됐다.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사태, 예멘 내전은 이란에 주변 국가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적절한 명분과 당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들 무력 분쟁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지 않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 예멘 반군,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가 이란의 대리군 또는 전위군 역할을 한다는 데 전문가들 의견이 모인다.
이란을 중심으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정부는 현재 이란에 우호적인 세력이 주도하고, 이를 잇는 띠를 '시아파 벨트'라고 부른다.
이란의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의 턱밑에서 6년째 내전 중인 예멘 반군도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방증하는 군사 조직이다.
견고했던 시아파 벨트는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도전받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만성적인 민생고와 기득 정치권의 부패에 대한 대중의 염증이 촉발제가 된 반정부 시위가 지난해 10월부터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이어지면서다.
이들 정부가 이란과 밀접한 관계인 만큼 이란에 적대적인 서방 언론은 반정부 시위를 이란의 내정 간섭에 반발하는 '반이란 민중 봉기'로 해석한다.
특히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많은 남부 지역에서 시위가 격렬히 벌어졌고, 이란 총영사관이 공격받기도 해 서방 언론의 이런 해석을 어느 정도 뒷받침했다.
지난해 10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
이라크의 한 소식통은 10일 연합뉴스에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시위대를 공격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여겨졌을 만큼 이란을 보는 시각이 시위에 대한 찬반을 나누는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위대가 설치한 텐트를 시아파 민병대원으로 알려진 이들이 급습하는 일도 있었다.
레바논에서도 민생고에 지친 시민들이 지난해 10월부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레바논의 현 정부는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주도하는 만큼 이 시위 역시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이란에 대한 반감이 표출됐다는 게 서방 언론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레바논 반정부 시위대의 집결지를 헤즈볼라와 현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이 공격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시위가 장기화해 피로도가 높아진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춤했던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는 4일 예상치 못하게 터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로 다시 불붙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정치권의 무능을 강하게 규탄했다.
일각에선 폭발의 원인이 된 질산암모늄이 헤즈볼라의 소유였다거나, 항구 창고에 비밀리에 저장된 이들의 무기가 터진 것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예기치 못한 대형 참사와 의혹 제기에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는 국민적 단합을 촉구하면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역학 구도상 수세에 처한 이란 역시 레바논에 구호물자를 신속히 지원하면서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란 외무부는 10일 낸 성명에서 "베이루트 폭발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 진상을 주의 깊게 조사해야 한다"라며 대폭발 참사의 정치적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서방은 이런 정세를 틈타 이란을 흔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반정부 시위로 친이란 성향의 총리가 퇴진하고 5월 미국과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진 무스타파 알카드히미 내각이 구성되자 대규모 군사·경제 지원을 위한 협의를 가속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베이루트 대폭발 이틀 뒤 레바논을 찾아 정부 교체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대의 환호 속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9일 주재한 레바논 지원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각국이 낸 지원금을 레바논 정부를 거치지 않고 유엔이 레바논 국민에게 직접 주겠다고 한 것도 헤즈볼라와 이란을 배제하려는 맥락으로 풀이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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