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트럼프 등 참석 국제 화상회의
지원과 함께 개혁,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
레바논 국민, 정부 불신과 분노 극에 달해
반정부 시위 계속, 화재·유혈사태 발생
장관·정치인 참사 책임 지고 줄줄이 사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주재로 9일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레바논 지원을 위한 국제 화상회의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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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해 이날 열린 화상회의에 참석한 국가 지도자들과 국제기구는 이같은 규모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4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대폭발에 따른 피해액은 약 150억 달러(약 17조8095억원)로 추정된다.
회의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 국가 정상들이 참석했다. 중국, 유럽연합(EU), 세계은행, 유엔, 국제적십자사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지원은 레바논 국민의 필요를 충족하는 방향에서 충분히, 적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최대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갖고 레바논 국민에게 직접 전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금은 유엔의 조정 아래 레바논 국민에게 직접 전달될 예정이다. AP통신은 이는 구호자금이 레바논 정부로 흘러 들어가는 일은 막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4일 베이루트 대폭발로 파괴된 베이루트의 유명 건물.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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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레바논 정부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불신이 배경이 됐다. 레바논 국민들은 소셜미디어(SNS) 상에서 정부를 통한 기부를 피하라고 요청했다. 정부가 너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일 베이루트 참사 현장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레바논 원조가 부정부패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AP통신은 "레바논은 당국이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은 나라"라면서 "피해 복구가 절실하지만, 구호자금이 곳곳에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마련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9일(현지시간) 베이루트 폭발 참사 희생자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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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화상회의에선 레바논에 대한 개혁과 이번 폭발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는 레바논 지원 노력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레바논의 모든 기관이 협력해 필요한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화상회의 참석 사실을 알리며 "대통령은 미국이 레바논 주민 지원에 준비돼 있고 기꺼이 그렇게 할 의향이 있음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대응에 있어 긴밀히 공조하기로 다른 지도자들과 뜻을 모았다. 레바논 정부에 완전하고 투명한 조사의 실시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폭발 참사가 발생한 레바논을 위해 국제사회가 연대해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교황은 주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지난 화요일(4일)의 재앙은 이 사랑하는 나라의 공익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아낌없는 도움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베이루트 폭발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힌 마날 압델 사마드 정보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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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 참사에 따른 후폭풍은 레바논 정치권에서 거세다. 베이루트 참사를 책임지는 의미로 장관과 정치인들의 사퇴도 잇따르고 있다.
마날 압델 사마드 정보부 장관이 국민에게 사과하며 물러난 데 이어 다미나오스 카타르 환경부 장관도 “여러 기회를 날려버린 무익한 정권”이라고 비난하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앞서 참사 이후 국회의원 5명도 물러났다.
폭발 참사에 분노한 시위가 며칠째 계속되는 가운데 시위 도중 의회 앞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위대 수백명이 출입 금지 구역인 의회 진입을 시도하면서 의회 입구에서 불이 났다고 로이터통신이 9일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대는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여 경찰과의 충돌로 유혈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레바논 반정부 시위대가 9일 의회 근처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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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이번 참사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란 점에서 분노하고 있다. 앞서 폭발을 일으킨 질산암모늄 2750t이 베이루트 항만 창고에 6년간 방치돼 있었던 데다 정부 관료들이 이를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단 사실이 드러났다.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 치솟은 인플레이션 등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던 레바논에서 폭발 참사까지 일어나면서 국민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참사로 지금까지 158명이 숨지고, 60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30만 명가량이 집을 잃었다. 이런 가운데 대폭발 지점과 가까운 곳에 살던 3세 여아가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가 사흘 만에 숨졌다. 확인된 사망자 158명 중 최연소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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