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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벽에 물 줄줄… ‘기생충’ 그 집은 장마가 무섭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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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공포’ 반지하주택 가보니

계속된 비로 벽지엔 검은 곰팡이… ‘이불·집기 젖을라’ 비닐로 덮어놔

전국 36만가구 중 96% 수도권에… 53% “수해 경험” 61% “곰팡이 펴”

전문가 “원래 사람이 못 사는 공간… 공공임대 우선 입주 등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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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일째 장마가 이어진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주택가. 재건축 공사가 한창인 이곳 공사장 주변으로 비슷하게 생긴 붉은 벽돌 집들이 가파른 언덕에 모여 있었다. 2∼3층짜리 집에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사는 다세대주택들이 많았다. 꼭대기 층에 주인집이 있고 지상에서 반지하까지 세입자가 모여 사는 형태였다.

한만희(75)씨는 이곳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96세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한씨의 집은 주택 마당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1층 복도 아래에서 몸을 반쯤 드러낸 한씨가 취재진을 먼저 발견해 집으로 안내했다. 네 칸의 계단을 내려가 철문을 열자 3평 남짓한 방 안에서 노모 정옥순(96)씨와 14살 된 반려견 ‘찌루’가 반겼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방 안은 어두웠다. 찌루까지 셋의 살림살이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란히 붙은 옆방에는 검은 곰팡이가 한쪽 벽면을 덮고 있었다. 비가 오면 벽을 타고 물이 흐르는 탓에 이불과 사용하지 않는 집기들은 비닐로 덮여있었다. 이날도 며칠째 이어진 비로 곰팡이가 핀 벽지에 물기가 흥건했다.

한씨가 사는 반지하 주택은 열악한 주거 유형 중 하나다. 올해 초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면서 한국만의 특별한 주거 형태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속 계층 구분의 소재였던 반지하는 영화 밖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9일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주택은 주거비가 높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국 반지하 거주 가구는 총 36만3896가구(68만8999명)로 이 중 서울 22만8467가구, 경기 9만9291가구, 인천 2만124가구 등 수도권에만 95.8%(34만8782가구)가 몰려 있다. 시군구 중에는 경기 성남시에 가장 많은 2만5683가구가 있고, 서울 관악구(1만9121가구), 중랑구(1만7839) 등이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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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의 경우처럼 반지하 주택은 환기와 통풍이 되지 않아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근 이어지고 있는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 등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반지하 주택이 밀집한 경기 시흥시 대야동·신천동 500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 수해를 경험한 가구가 53.1%로 절반을 넘었다. 수해를 한 차례 경험한 가구(28.3)가 가장 많았지만 7회 이상 경험한 가구도 3.2%에 달했다. 지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탓에 겪는 불편도 컸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문제로 곰팡이를 꼽은 응답자는 61.4%로 가장 많았고, 채광 부족(59.4%), 환기 문제(52.4%)도 절반 이상이 지적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시흥시 반지하 조사에서 이들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비율은 14.4%로 시흥시 평균(4.0%)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기초연금으로만 생활하고 있는 한씨도 올해 초 2000만원인 보증금을 1000만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쫓겨날 위기를 맞았다. 한씨는 집주인과 합의한 끝에 보증금은 올리지 않고 매달 10만원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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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동작구의 한 반지하 주택 안이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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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곳 주민이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반지하는 원래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반지하에 주거하는 사람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반지하 주민도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도록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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