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글 아무리 잘 써도 진정성 없는 반성문은 무효”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세계일보 자료사진 |
대학 학보사 편집국장 출신인 ‘박사방’ 사건 주범 조주빈(24·구속기소)이 재판 개시 후 12주째 거의 매일 재판부에 반성문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조씨는 과거 학보에 칼럼을 게재할 정도로 탁월한 필력을 자랑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반성문이라면 감형을 받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4월 텔레그램 ‘n번방’을 통한 성착취물 제작·유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후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이현우)에 이달 7일까지 총 63차례 반성문을 냈다고 한다. 특히 그중 59건은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5월19일 이후 12주 동안에 제출한 것들이다. 주중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썼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혐의를 인정하는 피고인이 법원에 거듭 반성문을 제출해 선처를 호소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다만 조씨는 혐의 일부는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는 공판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한다”면서도 강제추행·강요·아동청소년보호법상 강간 등 일부 혐의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자신이 제작·유포한 성착취물 속 미성년 여성을 강제로 추행하거나 성폭행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또 강요 역시 없었다는 논리다.
이처럼 조씨가 자신에게 적용된 여러 혐의 가운데 강제추행이나 강요 같은 혐의만 골라 부인하는 건 이들 범죄가 사실관계 입증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적’ 행동이란 분석이 많다. 대신 조씨는 디지털 증거에 의해 비교적 명확하게 입증이 가능한 성 착취물 유포 등 혐의는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해볼 만하다 싶은 건 끝까지 다퉈보겠다는 판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씨가 제출한 반성문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주빈이 대학 학보사 편집국장 시절 쓴 ‘데스크의 눈’ 칼럼.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지는 중요한 양형 조건이지만 법원은 반성문 제출만으로 피고인의 반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며 “혐의 일부를 부인하는 조씨의 태도는 결국 재판에서 진실을 가려보자는 의지를 드러낸 것인데, 그런 그가 낸 반성문이 양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씨가 이토록 반성문 쓰기에 매달리는 건 그만큼 필력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씨는 수도권의 한 대학 학보사 기자로 일했으며 학보사에서 학생 신분의 기자로는 가장 높은 편집국장까지 올라갔다. ‘데스크의 눈’이란 문패 아래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그는 성적이 우수해 재학 시절 여러 차례 장학금도 탔으며, 장애인 보호시설 등에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 경찰 수사 초기에 ‘두 얼굴의 청년’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