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신외교'로 개발도상국 포섭 나서
미국 턱밑 중남미에 10억 달러 규모 차관
필리핀, 백신 요청하며 남중국해 한 발 물러서
31일 기준 세계보건기구(WHO)에 등록된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백신은 26종이다. 이중 임상 최종 단계인 임상 3상에 들어선 것은 6종이며, 3종이 중국에서 개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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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으로 고통받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백신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진원지 논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등으로 국제 사회에서 수세에 몰리자 백신을 무기로 활로를 찾는 모양새다.
현재 중국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놓고 미국, 영국 등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에 들어선 중국의 백신 후보 물질은 3종으로, 중국이 미국(2종), 영국(1종)보다 숫자상 우위에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4일(현지시간)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백신 개발을 국제 사회에서 리더의 입지를 다질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에 백신 제공을 대가로 외교적 포섭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중국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멕시코와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의 백신 구매를 지원하기 위해 10억 달러(약 1조 1900억 원) 규모의 차관 제공을 약속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칠레, 쿠바 등 다른 중남미 국가 외무장관들도 참여한 온라인 회의에서 왕이 부장은 중국에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공공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월 “중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가장 먼저 아프리카에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에서 화상으로 열린 중국·아프리카 방제 협력 특별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아프리카 국가의 채무 상환 연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제공 등을 약속했다.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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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런 백신 외교는 미국과 영국 등이 벌이는 백신 선점 경쟁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2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13억 회분의 백신을 입도선매했다. 이런 경쟁에서 뒤처진 개발도상국들에 중국이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는 평가다.
미국 외교협회에서 국제보건 문제를 담당하는 옌중 황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백신 외교를 통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1세기판 육·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려는 일대일로(一带一路)는 중국을 중심으로 거대한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 굴기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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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백신 위해 남중국해 '백기'
벌써 성과도 나오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7일 국회 연설에서 “나흘 전 시진핑 주석에서 전화를 걸어 필리핀이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획득하거나 구매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남중국해 소유권 분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발언도 덧붙였다. 남중국해는 중국 남부와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으로 둘러싸여 영유권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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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백신 외교에선 코로나19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도 엿보인다. 지난 3월 중국은 이탈리아가 코로나19진앙지로 떠올랐을 때, 의료진 300명을 파견하고 중환자실 장비 등 31t 분량의 의료용품을 지원했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유럽연합(EU)에 의료용품 지원 등을 호소했지만, 대부분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소식을 전하며 중국이 연대를 표명하며 코로나19 발원지에서 ‘우호적인 지원자’로 이미지를 쇄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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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은 백신 신뢰도
전방위 백신 외교에 일각에선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약 14억 명의 중국 자국민 수요를 맞추기에도 벅찰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백신이 최소 2회 투여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수십억회 분의 백신이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SCMP는 중국 정부가 자국 수요를 맞추면서도 세계 공공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백신에 대한 신뢰도도 걸림돌이다. 이미 중국에선 2018년 48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중국에서 개발한 기준 미달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을 접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31일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을 상용화하기 전에 제대로 실험을 하기 바란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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