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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일본인이 한국어로 시티팝을 부르면, K팝일까?···‘서울여자’ 유키카가 답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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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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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첫 정규 앨범 <서울여자>을 발매한 가수 유키카를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유키카는 앨범 속 아련한 이미지와는 달리 “아재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꾸미는 걸 잘 못하고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좋아하는 음식은 소곱창”이라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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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로 유명한 일본 시즈오카(靜岡)현에서 태어났다. 네 살 무렵 도쿄로 이주했다. 10대 초 일본 연예계에 데뷔해 학창시절 내내 모델과 성우로 활동했다. K팝 걸그룹 리얼걸프로젝트 멤버로 한국에 온 것이 스물 셋, 시티팝 장르를 내세워 솔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게 스물 여섯. 지난달 21일 솔로 데뷔 1년5개월 만에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가수 유키카(27) 이야기다. 일본에서 온 가수가, 일본에서 온 장르를 불러도 여전히 ‘K팝’일 수 있을까. 그런 질문쯤이야 이미 예상했다는 듯 유키카와 그의 음악은 그저 태연하다. 앨범명부터가 벌써 <서울여자>다.

“자전적이진 않아요. 쉽게 말하면 콘셉트죠.”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유키카는 생각보다 훨씬 솔직했다. <서울여자> 발매 보도자료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다. “꿈을 찾아 한국으로 건너온 유키카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총 13개 트랙으로 구성됐다”고. 한국에 온 설렘을 그린 첫 트랙 ‘프롬 하네다 투 김포(From HND to GMP)’부터 사랑에 실패한 뒤 한국을 떠나기 직전의 상황을 담은 ‘올 플라이츠 아 딜레이드(All Flights Are Delayed)’까지 <서울여자>는 유키카를 주인공 삼아 뚜렷한 서사를 그려낸 앨범이다.

‘모든 게 전부 달라서 신기했었어.’ 유키카는 타이틀곡 ‘서울여자’를 여는 첫 가사부터 제동을 건다. “가사를 보고 작사가님에게 전혀 공감이 안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아무래도 외국이니까 설렘은 있었죠. 하지만 도쿄와 서울은 진짜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냥 사랑에 달뜬 앨범 속 주인공과는 달리, 유키카는 유쾌한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9번 트랙 ‘친구가 필요해’에는 일 핑계로 데이트를 미루는 남자친구와 제가 다투는 내레이션이 나와요. 곡에 나오는 유키카는 저랑 완전히 반대예요. 그런 나쁜 남자는 바로 차버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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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부터 K뷰티까지 ‘한류 열풍’의 포화 속에서 자란 유키카는 국적과 시대를 떠나 향수와 첨단을 탁월하게 ‘짬뽕’할 줄 아는 동시대 유일의 장르 K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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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카는 경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콘셉트와 현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고, 도쿄와 서울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일본의 여느 또래들처럼 소녀시대·카라 같은 K팝 가수에 열광하며 자랐지만, 엄마와 언니들 영향으로 야마시타 다쓰로, 기쿠치 모모코 등 1970~1980년대 시티팝 음악을 즐겨 듣기도 했다.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형성된 그의 음악 취향은 첫 앨범의 복합적 성격과 맞닿아 있다. 소속사 에스티메이트 대표이자 게임 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박진배 대표가 총괄 프로듀싱한 <서울여자>는 모노트리·모스픽·오레오 등 K팝 유명 작곡 팀들이 빚어낸 ‘첨단’과 ‘향수’로 반짝인다. 앨범은 1970~1980년대 일본 시티팝과 1990년대 한국 가요를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K팝의 최신 경향을 놓치지 않는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장르라고는 하지만, 일본 시티팝과 한국인이 만든 시티팝은 느낌이 달라요. 시티팝에는 특정한 코드나 악기를 써야 한다는 등 정해진 형식이 없거든요. 그러데 요즘 K팝에서 나오는 시티팝은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신시사이저가 주로 쓰이고 편안한 느낌이 있죠. 세련됐다고 할까요? 제가 하는 음악도 분명 K팝이라고 생각해요.” 보아부터 K뷰티까지 ‘한류 열풍’의 포화 속에서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일까. 유키카는 국적과 시대를 떠나 향수와 첨단을 탁월하게 ‘짬뽕’할 줄 아는 동시대 유일의 장르 K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유키카의 <서울여자>는 일본인 솔로 가수로는 최초로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 총 8개국 아이튠즈 K팝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경계를 넘나드는 K팝의 힘이다. 그럼에도 불안은 있다. 나날이 악화되는 한·일 갈등과 예측하기 어려운 정세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면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반일 감정에 대해서도 한국분들을 이해하고 있어요. 다만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져서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보여드리기 힘들 때는 아쉬움이 있죠. 어려운 상황이지만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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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발매된 유키카의 첫 정규 앨범 <서울여자> 커버 아트. 에스티메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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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5년차, 유키카가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엔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결과가 따라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사람마다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인생이라는 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유창한 한국어로 ‘달관의 경지’를 읊는 유키카의 해사한 얼굴에서, 체념과 분투 사이를 오가는 무수한 ‘서울 여자’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전에는 서울 여자들이 ‘안 되는 일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을 때 이해가 안 됐거든요(웃음). 이제는 저도 알게 됐어요.”

유키카는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원래는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는데, 오히려 가수로서의 기회를 많이 얻었어요. 한국에 계속 살며 가수로 활동하는 꿈을 갖게 됐죠.” 앨범 커버 사진처럼 제법 아련해지려던 유키카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진다. “한국에서 아파트를 사고 싶어요. 아니 매매는 아니더라도, 전세여도 괜찮아요. 그런데 보증금도 너무 비싸더라고요. 아, 서울은 너무 비싸요.” 어디서 나고 자랐든 지금 서울에 살면 다 ‘서울 여자’라던 유키카의 말이 맞았다. 이보다 더 ‘서울 여자’다운 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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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이 5년째, 유키카는 곡 제목대로 어느덧 ‘서울 여자’다운 꿈을 꾸고 있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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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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