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친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절 형성된 친노(친노무현)와 닿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한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문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 행보는 2012년에 시작된다. 그해 4월 치러진 19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9월에는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대선후보가 됐고 11월에는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리고 12월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때만 해도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민주통합당 주류를 친노로 지칭했다. 당시 총선 공천 과정,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친노 패권주의' '친노 퇴진론' 등 주장이 나온 것이 예다. 대선 주자 '문재인'이 등장하며 친문이란 표현이 나오기는 했지만 친노와 친문이 혼용된 때였다. 친노가 점차 친문으로 변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친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5년 2월 전당대회 이후로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변화와 단결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걸면서 경선에서 승리해 당대표가 된다. 문 대통령이 당권을 쥔 이때부터 다시 대선 준비가 시작됐고 아울러 문 대통령을 돕고 지지하는 인사들이 친문이라는 이름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당권'을 가진 시기다. 2012년과는 다른 점"이라며 "또다시 대선에서 질 수 없다는 인식 속에 친문 의원뿐만 아니라 친문 지지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 부각된 친문은 친노 정치인이거나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 경력을 갖고 있는 인사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라는 목표를 세웠고 이를 위한 준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는 문재인정부 성공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원조친문' 혹은 '진문'이라고 할 수 있다. 4선의 홍영표·윤호중 의원과 3선의 전해철 의원 등 중진급, 강병원·김정호·김종민·황희·전재수·최인호 의원 등 재선 의원, 김영배·민형배·정태호 의원 등 초선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별도로 '복심'으로 통하는 친문이 있다. 원외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원내에는 윤건영 의원 등이 꼽힌다. 이들은 '참여정부 청와대'란 강렬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기억의 중심에 '비서실장 문재인'이 자리하고 있다.
2015년 '문재인 대표'를 기점으로 친문이 민주당 주력으로 떠올랐다면 그 이후는 친문의 확장 과정이 있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인물과 문재인정부 들어 청와대나 내각 등에 포진한 인사다. 양향자·고민정·윤영찬 의원은 민간 영역에서 영입된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다 문재인정부에서 '역할'을 맡은 여당 정치인도 넓은 의미의 친문으로 꼽힌다.
또 한 차례 확장은 올해 총선과 관련돼 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영입돼 당선된 초선 의원인데, 소병철·이용우·이수진·임오경·김남국·김용민 의원 등 40여 명이다. "모두가 친문"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나왔다. 친문의 보편화 과정을 거친 셈이다. 다만 이들은 문재인정부 성공이라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출신이 다채롭고 사회적 경험도 다양하다는 점은 있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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