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앞 무릎 꿇은 남성 조형물, 韓日 관계 화두
日 정치권서 '아베 신조 총리 상징 아니냐'며 외교 결례 비판
조형물 제작자 "인물 특정 안해…조형물일 뿐"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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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소녀상 앞에 무릎 꿇은 남성 조형물이 한국·일본 양국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남성의 상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 외국 정상에 대한 결례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일본 관방장관까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다만 해당 조형물은 개인이 사비를 들여 조성한 사유재산인 데다, 제작자도 '특정 인물을 묘사한 게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해 외교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조형물 '영원한 속죄'는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민간 식물원인 '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돼 있다. 이 조형물은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 앞에 한 남성이 무릎 꿇고 속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식물원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소녀상에 무릎 꿇는 일본 지도자에 대한 조형물 '영원한 속죄'가 오는 8월 제막식을 열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원한 속죄'상은 28일 마이니치신문·산케이 신문 등 일 매체에 보도되면서 일본 정치권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한 나라의 정부수반을 모독한 상을 설치한 것은 중대한 외교적 결례라는 주장이다.
이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민간 식물원에 아베 총리의 상이 설치됐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만일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일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국제의례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세한 것은 모르지만 (문제 해결과는) 반대 방향으로 악화돼 가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도 "극히 유감으로 강하게 항의하겠다"며 "한국 정부는 신속하게 조형물을 철거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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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민간에서 제작된 조형물을 외교 문제로 섣불리 비화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조형물을 건립한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장은 29일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조형물은) 제 사비를 털어서 4년 전인 지난 2016년 만든 것"이라며 "특별한 의도는 없었고, 식물원에 있는 하나의 조형물이다. 제 머릿속에서 그냥 주물럭주물럭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베 총리를 묘사한 조형물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아니요"라며 "차라리 아베 총리였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는 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도 조형물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회사원 A(28) 씨는 "일반인이 개인적인 이유로 설치한 동상이니 양국 정부가 간섭하면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오히려 일본 쪽에서 큰 논란인 것처럼 부풀리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장인 B(31) 씨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라며 "제작자가 이미 아베 총리가 아니라고 했는데, (일 정부가) 그렇게 느낀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조형물 설치가 한일 관계는 물론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관계 해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직장인 C(28) 씨는 "왜 저렇게 굴욕적인 행동을 묘사한 조형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소녀상 앞에 일본 정상을 무릎 꿇리는 게 우리 목표였나"라며 "이런 것도 이른바 '정신승리'인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D(30) 씨는 "소녀상이 폭넓은 지지를 얻었던 것은 특정 집단이나 국가와의 갈등을 너무 크게 부각하지 않고 피해자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거기에 '절을 받는다'는 행동을 묘사한 것은 그야말로 사족"이라고 지적했다.
28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 남성 조형물의 얼굴 조형. 사비로 해당 조형물을 제작한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은 이 남성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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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도 해당 조형물 논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외교부는 28일 입장문을 내 "정부와 무관한 민간 차원 행사에 대한 구체 언급은 자제코자 한다"면서도 "다만, 정부로서는 외국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국제 예양(禮讓·국가 간 행하는 예의)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국자생식물원은 당초 다음달 10일 예정됐던 조형물 제막식을 취소했다. 다만 해당 조형물 자체는 식물원에 계속 전시돼 있을 예정이다.
김 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제 앞마당에 설치해 놓은 것을 이웃이 뭐라 한다고 창고에 들여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사람들이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그냥 (식물원에) 놓겠다"고 밝혔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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