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집값 대책이 난데없이 행정수도 이전 논란으로 튀었다.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던진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린 지 16년 만에 수도 이전 논란이 부활한 모습이다.
수도 이전은 수많은 합의와 숙고를 거쳐야 하는 '백년대계'다. 갑작스런 논의는 부동산 정책의 연이은 실패로 지지율이 흔들리자 땜질 처방으로 나왔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다. 인터넷에서는 "전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20년마다 수도를 옮기면 되겠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수도권 과밀 해소도 미지수다. 세종에 내려온 부처의 고위 관료 중 다수가 여전히 서울에서 통근한다. 집값을 올리는 건 고용중심성과 직주근접성이라는 경제적 논리다. 행정부처 이전으로 과밀이 바로 해소될 리도 없는데 무작정 수도 이전을 방안으로 내던지는 모습이다.
벌써 세종 집값을 자극하는 역효과도 낳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안 그래도 미친 가격"이라며 "치솟는 세종 집값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집값은 올해 들어 벌써 21.4% 치솟았다.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주변부로 개발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토지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 집값에만 몰두하며 지방에는 무감각했던 전례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6·17 대책으로 대전을 규제지역으로 묶자 업계에서는 '만시지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부터 대전 집값이 지속적 상승세를 보였지만 국토교통부는 "면밀히 보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실질적 대책은 내놓지 않다가 몇 달이 지나서야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대전 서구와 유성구도 이미 올해 집값 상승률이 10%를 넘었다.
여당은 "백년대계 중대사를 덮어놓을 수 없다"지만 정작 백년을 내다보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정부와 여당은 거듭된 땜질 처방으로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초했다. 이제는 수도 이전까지 끌어들여 논란만 키우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집값 안정책부터 내놔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22일 오후 세종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아파트 매물을 문의하는 시민과 부동산 관계자가 지도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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