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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시장원리 무시한 집값 대책… 코너 몰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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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틀어막고 임대혜택 폐지 등

투기 억제 정책 되레 부작용 속출

땜질식 처방 약발 못 받고 악순환

세계일보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정부가 6·17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시장은 안정되기는커녕 여전히 널뛰기를 하고 있다. ‘풍선효과’를 타고 서울은 물론 수도권과 지방까지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그 사이 부랴부랴 추가한 7·10 대책까지 모두 20차례 넘게 쏟아진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현금부자·다주택자가 아닌 애꿎은 서민·실수요자만 잡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악화된 민심이 정부·여당을 향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정권 전체가 수습책에 몰두하고 있지만 중구난방 대응으로 혼란만 키우는 형국이다. 현 정부 부동산대책의 문제점과 시장에 미친 영향,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정책이 코너에 몰렸다.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일관성 없이 내놓은 ‘두더지 잡기’식 대책이 반복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처방은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규제한 뒤 더욱더 강력한 규제를 찾는 악순환만 낳는 실정이다. 부동산 업계와 전문가들은 일관성, 신뢰, 퇴로가 없는 ‘3무(無)’ 대책으로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일 국회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여권은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을 추진하는 동시에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임대차 3법’을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주택 수요를 억제하고 투기 세력을 강하게 처벌하기 위한 의도와 달리, 곳곳에 부작용이 확인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신뢰 하락

6·17 대책에 따른 대출 강화 규제는 무주택자와 1주택자 등 실수요자의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정부는 대출 한도를 높이고 이자는 낮추는 보완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규제지역이 늘어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제한에 걸려 아파트 분양 잔금대출 등이 가로막혔다는 비판에 일정 소득기준 이하 서민·실수요자의 LTV를 10%포인트 확대하고, 전세나 월세 자금 대출에 대한 지원도 늘리기로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등록임대 혜택 폐지는 정부가 스스로 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12월에는 임대사업자에 대해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며 임대등록 활성화를 시도했다. 이듬해부터 세제 혜택 일부를 축소하다가 사실상 7·10 대책을 통해 제도 자체가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정책 일관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는 기존의 4년 단기, 8년 장기임대로 운영하던 제도를 아파트를 제외한 일부 빌라 등에 한해 10년 이상 장기임대만 등록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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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6·17 부동산 정책 후속 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에는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방안을 포함하느냐를 두고 정부 부처들과 서울시 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논란 끝에 일단 그린벨트 해제까지 검토하는 쪽으로 정리는 됐지만, 용적률을 비롯한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면서 여권 내에서조차 우려가 크다. 그린벨트 해제 방침의 경우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지난 16일 방송 출연 도중 마이크가 꺼진 줄 모르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그렇게 해도 (집값은) 안 떨어질 것”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진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정도 정책을 써서 집값이 하락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음에도 여당도 정부 정책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 신뢰가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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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처신도 신뢰 하락을 부추겼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고위공직자 750명 중 33.1%(248명)가 다주택자다. 고위공직자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했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 아파트와 충북 청주 흥덕구 아파트를 보유한 사실이 알려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 아파트 대신 지역구였던 청주 아파트를 먼저 내놓았다가 뭇매를 맞았고 결국 “송구하다”며 두 채 다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퇴로까지 막는 초강력 규제에 민심 떠나

거듭된 초강수 카드에 퇴로가 막힌 것은 정부나 주택 수요자 모두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수요자들은 비규제 지역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들썩이고, 정부는 규제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더 센 대책을 찾느라 분주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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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및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2017년 6·19 대책을 시작으로 꾸준히 투기지역과 조정대상지역 등을 확대하자, 수도권 외곽이나 충청권 등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사실상 수도권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어버리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서울·경기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대신 다세대·연립·오피스텔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날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경기 지역 다세대·연립주택 매매량은 6186건으로, 2008년 5월 매매량(6940건) 이후 12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 6월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매매는 2018년 3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최다치를 경신했다.

다주택자와 세입자는 궁지에 몰렸다. 7·10 대책에는 다주택자 대상 종부세율을 최고 6%까지 인상하는 방안과 함께 양도세와 취득세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올려 매각을 유도하는 동시에 집값 상승으로 얻게 될 불로소득까지 상당 부분 환수하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서 양도 대신 증여로 우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정부·여당은 증여 취득세율까지 대폭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유세와 거래세 동반 인상으로 퇴로가 막힌 다주택자들은 집을 파는 대신 세입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거나 월세를 인상하는 식으로 세금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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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다세대·연립주택. 연합뉴스


사모펀드가 서울 강남권의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사는 일도 벌어졌다.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소수의 ‘큰손’에 의해 투자가 이뤄진다. 따라서 사모펀드를 통한 매입은 다주택자에 대해 강화된 규제를 피하면서 시세차익을 누릴 수단이 될 수 있다.

분노한 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전날 서울 종로구 예금보험공사 앞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는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는 물론, 신혼부부와 1주택자 등까지 500여명이 모여 집회를 벌였다. 진행을 맡은 ‘조세저항 국민운동’의 운영진 이형오씨는 “정부가 다주택자와 1주택자, 무주택자를 범죄자와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실시간 검색어를 띄우고, 일부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위헌성을 지적하는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등 앞으로도 단체행동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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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및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재건축·재개발을 막고 주택 신규 공급도 규제하면서 대출도 까다로워지는 등 규제 일변도로 가니까 집을 사야 하는 사람이나 사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급하게 땜질식 처방을 내놓느라 공청회를 통해 각계 전문가나 일반 시민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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