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ㆍ사회학자가 본 한국의 부동산]
수많은 욕망 응축된 아파트에 정치 개입
반복대책에 ‘집값 오른다’ 확증편향 사고
부의 사다리 뺏길라 불안한 30대 포모족
“인사교체, 공급대책 등 확실한 신호 필요”
정부는 지난 10일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를 대폭 끌어올리는 부동산 보완대책을 발표했다.이번 정부들어 22번째 대책이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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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효과 없이 반복된 규제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의 수많은 대책에도 주택시장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심리ㆍ사회학적 측면에서 관련 전문가(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통해 한국 부동산 시장의 자화상과 해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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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교수 "불안 키우는 포모 증후군"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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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사라질라’ 30대 포모족=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감지되고 있는 이상 현상은 '30대'다. 이들은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40ㆍ50대를 밀어내고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곽금주 교수는 “집값이 워낙 빠르게 뛰는데 지금 안 사면 평생 못 살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30대의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집을 사서 돈을 버는데 자신만 소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상당수가 취업 기간이 짧아 모아둔 돈은 적은데 정부가 대출을 죄는 것도 원인이다. 대출 틈새가 더 좁아지기 전에 신용대출 등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사겠다는 의지를 키우고 있다.
1주택자나 무주택자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실수요자를 위한 대책이라는 정부 주장과 상반된 결과다. 가장 큰 이유는 22차례 땜질식 대책으로 피해를 보는 실수요자가 늘고 있어서다. 하지현 교수는 “정부가 투기를 막겠다며 갭투자 등 각종 부동산 투자 수단을 차단하면서 ‘부의 사다리’를 뺏겼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람마다 갭투자나 전세대출 등으로 집을 넓혀가다 보면 몇 년 뒤에는 좋은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며 “하지만 정부가 이조차 투기로 보고 막자 기회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덕진 교수는 "기득권층인 386세대는 장기적으로 전체 사회를 위해 이익(집값 안정)이 된다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세상은 달라졌다”며 “젊은층은 개개인의 만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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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교수 "정부 개입하자 정치화"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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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응축된 아파트=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사라지고 있다. 효과 없이 반복된 규제에 내성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지난달 17일 대책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올랐고 신고가를 기록한 아파트도 줄줄이 나왔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해도 집값이 뛰니 확증편향은 더 커지고 있다. 곽 교수는 “대중은 집값 상승세 등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최근 다주택자인 고위공직자 이슈도 ‘거봐라 정부 관료도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안 파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대책의 가장 큰 실수로 집에 대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 교수는 “개인의 욕망은 물론 타인의 욕망까지 반영된 공간이 집”이라고 강조한다. 아파트를 '쇼핑'할 때 팔 때를 대비해 남들 눈에도 좋은 집을 고르려는 게 대표적인 예다. 아파트가 전국에 규격화된 상품처럼 공급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똑같은 평수라도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파트의 계급화는 뚜렷해지고 있다. 김경일 교수는 “가장 비싼 아파트가 몰린 강남에 산다고 규제가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강남에 20년~30년 산 사람에게는 아파트가 땀 흘려 열심히 살아온 증거일 수 있다. 이들의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누르면 반발 심리만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욕망이 녹아 있는 아파트를 정부는 정치로만 접근하고 있다. 정권 초기부터 집값 안정을 목표로 ‘투기와의 전쟁’ 중이다. 장 교수는 “시장 원리에 맡기는 대신 정부가 개입한 순간 시장은 정치화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번 정부는 과거 보수 정부가 손대지 않은 부동산에 개입하면서 부동산이 최대 정치변수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문제는 ‘다주택자는 곧 투기꾼’이란 식의 선악 프레임에 갇혀 대책을 쏟다 보니 반작용이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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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교수 "동조화로 집단적 변화"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대 정신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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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르기 전에 사자"=거듭된 정책 실패는 집값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인식이 집단적 심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하 교수는 “대중이 특정한 생각에 동조화하는 순간 집단적 변화가 나타난다”며 “마치 청약 열풍처럼 집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대중의 심리를 ‘더 큰 바보효과’ 이론으로 분석한다. 곽 교수는 “남보다 높은 가격에 집을 산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보다 더한 바보가 더 비싼 가격에 살 거라는 믿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부동산 시장이 거품이 터지는 ‘티핑포인트(임계점)’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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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 "강하되 빈도 낮춰야 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
해법은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부동산 대책은 타이밍이 중요한 심리전'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중요한 메시지는 강하게, 발표 빈도는 낮춰야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아무리 중요한 대책이라도 자주하면 둔감해진다는 조언이다. 일관되고 장기적인 시각도 중요하다.
장 교수는 “무조건 옥죄기보다는 부동산 수익률이 과거보다 낮아지게 하는 대책을 10년만 유지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 교수는 “사람들이 확증편향에서 빠져나오고 정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사 교체나 공급 대책 같은 확실한 신호를 줘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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