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원의 부동산노트]
대책마다 끊이지 않는 논란
시장 반발 키워 효과는 반감
“작은 자갈이 차를 뒤집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0일 주택임대사업자 폐지를 포함한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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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지난 10일 발표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 평가 요청에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답글이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 교수는 최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해 주목받았다. 이번 대책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조 교수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속담으로 답했다. 그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의무만 지우면 임대사업자들이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까?”라고 덧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대책에 대한 주택임대사업자들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10년 임대해 양도세 70%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8년 만에 임대등록을 자동말소하면 50%만 공제를 받느냐” “재건축 아파트 임대 기간은 재건축 후 기간을 합치는데 공사하는 동안 말소돼 임대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12일 ‘”작년 판 집, 8억 토하라니”…징벌세금 맞는 임대사업자'(news.joins.com/article/23822513)기사가 나간 뒤 정부 대책에 항의하는 메일이 쏟아졌다(정부는 보도 후 혜택을 유지하겠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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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발표 다음날부터 전격 시행
현 정부의 첫 부동산 종합대책인 2017년 8·2대책부터 ‘디테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1주택 양도세 비과세에 2년 거주 요건을 추가했다. 2011년 6월 거주 요건을 없앤 이후 6년여 만에 부활했다. 그동안은 2~3년 보유만 하면 됐다. 6년 만에 있는 큰 변화였지만 정부는 대책 발표 바로 다음 날인 8월 3일 이후 잔금을 치른 취득분부터 적용하겠다고 했다. 거주를 생각지 않고 8월 2일 이전 계약해놓고 아직 잔금을 치르지 못한 사람은 날벼락을 맞았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8월 2일 이전 계약한 무주택자에 한해 기존 규정을 적용하기로 정리했다. 이번엔 기존 집이 있으면서 새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분양 계약한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국토교통부의 '렌트홈'사이트에서 등록 임대주택 현황을 알 수 있다. 표시된 숫자는 가구수. [국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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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17대책 때는 생각지 못한 조정대상지역 지정으로 중도금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 신규 분양 당첨자들이 반발했다. 지난해 12·16대책 후엔 대출 규제에 대한 불만이 컸다. 정부는 15억원 초과의 주택담보대출 금지를 바로 다음 날(17일)부터 바로 시행했다.
정부 대책이 발표되면 관심은 “나는 어떻게 되나”다. 세부 적용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대책의 큰 틀보다 세부 기준이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할수록 반발과 저항이 커진다. 정부 대책의 강도가 갈수록 세졌는데도 효과가 오히려 약한 것은 디테일 부족으로 시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대책이 시장에 흡수될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이니 혼란은 더 심하다. 2002년 1주택 양도세 비과세 거주(1년) 요건을 도입할 때는 대책 발표(2002년 9월 4일)부터 시행(같은 해 12월 말)까지 100일 정도의 경과 기간을 뒀다. 노무현 정부 때 3주택 이상 양도세 중과 관련 법령이 2004년 1월 1일 개정됐지만 시행은 1년 뒤였다. 대책 발표(2003년 10월 29일)부터 경과 기간 1년 2개월이었다. 2017년 8월 2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발표부터 시행(2018년 4월 1일)까지 경과 기간은 8개월이었다.
현 정부는 투기지역 등 규제지역 지정 효력이 대책 바로 다음 날부터 생기도록 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발표에서 지정까지 며칠간의 여유를 뒀고 지정을 위해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었다. 2002년 4월 25일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에서 서울 강남구 등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기로 의결했고 지정 공고는 같은 달 30일이었다. 일부 규제지역은 ‘예고제’도 시행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대책 발표와 시행이 군사작전을 연상시킨다”며 “전격적이다 보니 허점이 많고 부실과 땜질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6·17대책의 재건축 분양 자격 ‘2년 거주’ 요건을 채울 수 없는 주택임대사업자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구체적인 현황조사를 거쳐 (보완책을) 검토키로 했다”고 해명했다. 현황을 제대로 모르고 발표했다는 말이다. 이번 7·10대책의 주택임대사업자 등록 제도 폐지 발표 뒤에도 정부는 “세부 내용은 관계부처 간 면밀한 검토를 거쳐 이달 중 안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변호사는 “부동산 정책은 정부와 시장의 계약과 마찬가지”라며 “주택임대사업자 폐지는 정부가 계약의 기본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져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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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사라질 대책에 10년 혜택
디테일이 부족하다 보니 정부 정책 안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정부는 2017년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때 3년 뒤인 2020년 이후 등록 의무화를 추진하고 이와 연계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2017년 발표 때 이미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 전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한시적인 방안이라는 것을 염두에 뒀던 셈이다. 그런데도 3~4년 정도밖에 유효하지 않을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에 정부는 10년 이상 가는 파격적인 혜택을 듬뿍 담았다.
자료: 국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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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결국 시장 참여자에게 돌아간다. 자신을 주택임대사업자라고 밝힌 박모씨는 기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정부가 몇 년 뒤 없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온갖 혜택으로 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해 놓고는 인제 와서 뒤통수를 쳤다”고 따졌다. "정부가 '실수요 보호'를 외치는데 정부 정책을 믿고 순응한 우리가 실수요 아닌가"라는 불만도 적지 않다.
큰일에서 디테일의 중요성은 대통령이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 검찰개혁을 두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와 비슷한 불라리아 속담은 디테일을 경시했다가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은 자갈이 차를 뒤집는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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