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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설]박원순 시장이 우리 사회에 던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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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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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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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서울시청에서 엄수됐다. 박 시장은 가족과 지인, 시민대표 100여명의 배웅을 받으며 고향 경남 창녕으로 돌아가 한 줌의 재로 영면했다. 온라인으로도 진행된 그의 영결식에 많은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인권·시민 운동사에 큰 궤적을 남긴 그를 보내는 마음은 무겁다. 성추행 피소와 조문을 둘러싸고 표출된 논란과 갈등이 우리 사회에 숙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공과 과를 냉정히 평가하면서 우리 사회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해결에서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

공동장례위원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영결식에서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라며 “박원순이라는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공인으로서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애도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마땅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의 말대로 박 시장에 대한 애도의 뜻과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애도의 시간’이 마냥 길어질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영결식이 끝난 후 성추행 피해자 측 변호인과 여성단체들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가 비서직을 수행하는 4년간 및 다른 부서로 발령된 이후까지 겪은 시장 집무실·집무실 내 침실 등에서의 신체적 접촉,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한 음란한 문자와 사진 전송 등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첫걸음은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다. 애도에 수반되는 성찰과 비판은 진상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여성단체들은 “피고소인이 망인이 되어 형사고소를 진행할 수 없지만 피해자는 여기 있다. 진실규명이 피해자 인권회복의 첫걸음”이라면서 경찰과 서울시 등에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정부와 국회, 정당에도 책임 있는 행보를 위한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잠재적 피해자들의 고통을 감안하면 진상규명을 서둘러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계속 마련해왔지만 실제론 작동하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성범죄신고센터를 설치했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퇴 이후에도 성범죄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서울시는 ‘성희롱, 성폭력 없는 성평등도시 추진계획’을 세우고 젠더 특별보좌관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는 제도상에서만 존재했다. 다른 정당과 지자체,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이 성범죄 안전구역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권력자에 의한 성폭력 위험은 상존한다. 5일장 반대 국민청원이 60만에 육박한 데에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서 구제될 수 없다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분노, 국가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는 절망이 깔려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피해 호소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제 진실규명과 함께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것만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는 피해자를 위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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