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실관계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A씨 쪽은 비서직을 수행했던 4년 동안, 그리고 다른 부서로 발령 난 뒤까지도 지속해서 성추행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장소는 시장실 사무공간과 집무실 내 침실 등이라는 게 A씨 쪽 주장이다. 견디다 못한 A씨가 성적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부서를 옮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에게서 모바일 메신저로 받은 문자와 사진을 동료 공무원이나 알고 지내던 기자 등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는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박 시장의 사망 후 경찰의 경고에도 온·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2차 가해도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A씨에 대한 무차별적인 신상털이는 물론이고 일부에서는 박 시장의 사망을 A씨 탓으로 돌리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데 고소장이 제출된 만큼 신속한 수사로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다.
비극적인 이번 사건을 두고 박 시장 지지 여부나 정치적 입장 등에 따라 입장차가 확연해 마치 '조국 사태' 때 두 쪽으로 갈린 진영 대결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행정가로서 평생을 바친 박 시장의 업적을 평가하고 추모하자는 쪽과 성추행 논란을 부각하려는 쪽이 팽팽히 맞서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여당에서는 처음으로 사과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당내에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이 잇따르는 현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오후에 "피해 호소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고 사과하며 상황 수습에 나선 건 다행이다. 인터넷에는 여성 비서를 고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투' 운동 이후 직장이나 사회활동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뜻으로 쓰여온 '펜스 룰'을 지지하는 의견도 다시 등장했다. '굳이 여비서 쓸 필요가 없는데 아예 말 나오지 않게 이참에 남비서로 다 바꿨으면 좋겠다'는 인식은 성추행 의혹을 접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여성에 대한 편견·차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번 사건을 핑계 삼아 박 시장이 걸어온 삶과 공(功)까지 부정해선 안 되지만 되풀이되는 권력형 성범죄의 재발을 막으려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찰은 박 시장의 사망에 따라 통상적 관행대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인데 사안의 중대성과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고려하면 서둘러 사건을 덮는 게 능사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경찰은 고소장 접수 직후 수사상황을 피고소인 쪽에 전달했다는 의심까지 받는 상황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박 시장을 가해자라고 기정사실화하는 건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런 얘기를 하려면 '피해자'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박 시장이 이룬 사회적 업적이나 사망을 이유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A씨의 안쓰러운 절규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외침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소박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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