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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신율의 정치 읽기] 美 대선 ‘10월 서프라이즈’…韓 히든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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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신임 국가정보원장에 내정된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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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서훈 국정원장은 청와대 안보실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의용 전 안보실장은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로 임명됐다.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는 김대중정부 시절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서훈 신임 청와대 안보실장은 국정원에서 대북 관련 업무만 30여년간 맡아온 대북 전문가다. 임종석 신임 외교안보특보는 민간 분야에 있을 때도 대북 관련 문제를 다뤘을 정도로 북한 문제에 애착이 깊다. 정의용 신임 특보 역시 최초의 미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데 상당한 공이 있는 인물로 알려진다.

외교·안보 라인 모두가 대북 라인으로 충원된 셈이다. 외교와 안보 관련 문제가 북한 관련 사안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차원에서 보면, 지금 같은 ‘인적 구성’을 두고 걱정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보다도 주목할 점은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정권이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업적’ 관련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부분이다.

지금 현 정권이 ‘업적’을 남기기 용이한 분야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정치나 권력기관 개혁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권력기관 개혁과 관련, 지난 7월 3일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직무 수행 지지도에서 추미애 법무장관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야당 대선 후보로 윤석열 총장이 선두주자로 부각됐다. 검찰 문제를 보는 국민 시각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현 정권은 자신들의 ‘역사의 트레이드마크’를 ‘한반도 평화 문제’로 잡은 것 같다. 물론 이 역시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북한 문제에 쉽게 뛰어들기 힘들다. 북한도 현재 시점에서는 쉽게 대화에 나설 성싶지 않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7월 4일 담화를 통해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선희 발언의 배경에는,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과 빅터 차 CSIS 한국석좌의 발언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발언이 있다.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7월 3일 “미국에는 선거 직전 ‘10월의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면 그의 친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또 다른 회담이 상황을 뒤집어놓을 어떤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북한 영변 폐쇄와 일부 대북제재 해제를 교환할 수 있다면 ‘10월의 서프라이즈’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국 측 인사들 발언 이전에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대선 전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했다. 7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EU 상임의장에게 “(미국) 대선 전에 미북 간 대화(미북정상회담) 노력을 더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최선희 발언은 이런 언급에 대한 답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북한 답변을 문자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오히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에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북 대화를 대선 전략으로 삼을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트럼프 측이 미북정상회담을 대선 전략으로 삼는다 해도, 이를 우리 정부가 마냥 반길 수 있는 상황인가 역시 중요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 대선에서 ‘10월 서프라이즈’가 등장할 것이라는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말은 맞다.

대선 관련 서프라이즈가 반드시 10월에 등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통 대선 직전 시기인 9월이나 10월 그리고 11월에 집중적으로 ‘서프라이즈’가 등장한다. 이를 통칭해 10월 서프라이즈라고 부른다. 대선 임박한 시기에 서프라이즈가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상대에 대한 의혹을 터뜨렸을 때 수습할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앉아서 당할 확률이 높은 시기라는 의미다.

역대 대선에서 등장했던 10월 서프라이즈는 미북정상회담 같은 성격의 사안이 아니었다.

2012년 대선은 밋 롬니 공화당 후보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간의 대결이었는데, 9월경 밋 롬니 후보가 “미국민의 47%는 세금을 안 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희생자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찍힌 몰래카메라가 공개됐다. 롬니 후보는 결국 패배했다. 2004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와 부시에 대해 비난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많은 이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이 동영상이 당시 10월 서프라이즈의 소재가 됐는데, 동영상이 공개되자 민주당 케리 후보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반대로 공화당 부시 후보 지지율은 올라갔다.

이처럼 10월 서프라이즈 소재는 미국 국내 문제, 특히 미국 유권자 이익과 직결되거나 공직 윤리에 관한 문제가 주를 이뤘음을 알 수 있다. 미북정상회담 같이 미국인 이익에 직접 연관되지 않는 문제는 소재가 된 적이 거의 없다.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측이 과연 미북정상회담을 대선용 10월 서프라이즈로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대놓고 대선 전에 미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노력할 경우, 트럼프 상대인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측은 이를 트럼프를 돕는 행위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재 미국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능가한다. 이를 감안해 우리 정부는 더욱 조심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미국처럼 대선에서 간접선거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의 여론조사 결과를 100% 신뢰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여론조사 추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당연히 지지율 면에서 트럼프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며 우리 정부의 대미 외교가 이뤄져야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정부는 야당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미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을 하되, 야당은 미국 민주당과 호흡을 같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 행위다. 이런 정치적 행위는 외교에서 흔히 발생한다. 정부와 야당 간 역할 분담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수 제1야당에 충분한 역할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한 제1야당에 걸맞은 위상을 인정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가 미북정상회담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비롯한 국제적 상황을 잘 고려해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외교는 무한하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7호 (2020.07.15~07.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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