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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시론] 朴 시장의 선택을 존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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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경시, 모방 행위 우려… 피해자 존중, 진실 규명 어디로

조선일보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선출직 공직자 한 분이 불행한 선택을 했다. 오죽 외롭고 괴로웠을까? 그 아픔을 통감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순 없다.

첫째, 그는 생명을 경시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 학생들에게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 생명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라 배운다. 그 생명에는 자신의 생명도 포함된다. 그런데 모범을 보일 공직자가 오히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내 생명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가? 생명은 소중하며 자신의 생명도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두 말뿐이었나?

둘째, 고위 공직자의 불행한 선택은 자칫 모방 행위를 낳을 수 있다. 범죄 혐의를 받은 선출직 공직자는 그 전에도 있었다. 성실히 수사에 임하고 당당히 재판에 응한 이들은 세간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반면 불행한 선택으로 대응한 사람들은 추모와 존경을 받는다. 이런 대응은 잘못된 신호를 준다. 불행한 선택이 수사와 재판에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판단이 확산한다면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피해자를 존중해야 한다. 범죄 혐의 제기 후 불행한 선택을 한 공직자 추모에 집중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점에서 이번 사건 관련 집권 여당의 태도는 매우 아쉽다. 사건 직후 공지된 더불어민주당 브리핑과 최고위 발언에 범죄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일언반구 배려가 없다. 오히려 일부 지지자 중에서는 해당 고소인을 색출하겠다는 적반하장도 보인다. 선의에서 비롯된 추모가 자칫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낙인찍기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넷째, 불행한 선택은 진실 규명을 가로막아 유권자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이다. 선출직은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지기로 하고 나선다. 형사 고소장이 들어가면 사실에 근거하여 결백을 밝히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지는 것이 도리이다. 현행법상 피의자 사망 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된다. 진실은 오리무중이 되고, 고소인 피해는 구제받지 못한다. 유권자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재직 중 행위에 대해 범죄 혐의가 제기된 후 불행한 선택을 한 공직자에 대해 국민 세금으로 추모 행사를 해선 안 된다. 개별 시민이 추모를 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공금으로 추모 행사를 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필요하면 규정을 바꿀 일이다. 공식적 추모는 자칫 범죄 혐의에 면죄부를 주거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유권자에 대한 실례가 될 수 있다.

둘째, 공천한 정당이 책임을 져야 한다. 고인에 대한 수사는 불가능하다 해도 고인을 공천한 정당에서 사실을 파악하여 혐의에 근거 있다 판단되면 유권자에게 사과하고 보궐선거에 입후보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셋째, 무죄 추정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판결 확정 전 무죄로 추정한다. 선출직 공무원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형사 고소만으로 유죄를 추정하는 관행이 일부 있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NHK를 비롯해 일본 주요 언론에서는, 범죄 혐의자 신상은 공개해도 포승에 묶이거나 수갑 찬 모습 등 무죄 추정에 어긋나는 화면은 절대 내보내지 않는다. 범죄 혐의 보도 역시 비교적 무미건조하게 중립적으로 한다. 무죄 추정을 보도에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관행은 배울 필요가 있다. 형사 고소가 있다 해도 선출직 공직자가 차분히 유무죄를 다툴 수 있도록 해줘야 불행한 선택을 예방할 수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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