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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시선2035] 또 아이들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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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얼마 전 아이의 두 돌 생일 파티를 했다. 남자 평균 결혼 연령이 33세인 요즘 평균보다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요즘 시대에 드문 애국자”라는 칭찬도 가끔 듣지만 “내 아이가 저출산 고령 사회를 지연시키고, 국민연금의 부담을 덜어주리라” 따위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칭찬받을 때마다 민망하다. ‘더 행복하고 싶다’는 열망 아래 아내와 상의해 아이를 낳았다. 행복해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아이는 포켓몬스터 ‘잉어킹’만큼 무능했다. ‘파닥거리기’가 잉어킹의 유일한 기술이라면 아이는 ‘울기’ 스킬을 24시간 시전 했다. 아내와 나의 건강은 날로 쇠약해졌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피카츄’보다 귀여웠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던가. 미칠 듯한 고통에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아이의 귀여움이 날 구원했다. 천사 같은 아이의 미소에서 천국을 엿보며 피카츄·라이츄·파이리·꼬부기 같은 아이와 사막에서 정글에서 울다가 웃다가 2년이 지났다.

중앙일보

시선2035 7/13


그 2년 동안 일부러 안 읽는 기사가 생겼다. 아동 학대 관련 기사다. 실수로 ‘어린이집 아동학대’ 영상이라도 클릭하면 ‘뒤로’ 버튼을 287번 눌렀다. 절망적이게도 얼마 전 보건복지부로 출입처를 옮기며 이제 안 읽을 수 없게 됐다. 아동학대는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했다.

그렇게 천안 가방 아동 학대 사건과 경남 창녕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9살 소녀의 사건을 접했다. 천안에서 가방에 갇힌 아이는 결국 숨을 거뒀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 이미 폭행을 당해 병원에서 아동학대를 신고했던 아이였다. 2017~18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 66명 중 4명이 이미 사망 신고 이전에 아동학대로 인한 신고 이력이 있었다. 과연 1년에 두 명 밖에 없을지 의문이지만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2018년 기준 학대 피해 아동이 원래 가정에서 지낸 경우는 약 82%다. 분리 조치를 시행한 경우는 13.4%뿐이다. 매년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이’가 죽었다. 엽기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력한 분리 조치와 관련 기관 종사자의 처우 개선 등 해결책이 제시된다. 새로운 해답이 아니다. 다만 매번 반복되는 이유는 답을 시행하는 어른이 없어서다. 피해 아동을 격리·보호할 수 있는 쉼터는 72곳이다. 지난해보다 1곳이 오히려 줄었다. 쉼터 한 곳당 7명이 머무를 수 있으니 500명 정도의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셈이다. 2018년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3만2345건이고 상황이 심각한 응급 아동학대 사례만 1187건이다.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정부 예산은 올해 약 285억 원으로 보건복지부 총 예산(82조 5269억 원)의 0.03% 수준이다. "애들은 표가 안 되니까 예산도 없죠”라는 아동보호시설 관계자의 말이 돌이 돼 가슴을 때린다. 어른들은 올해도 “돈 없다”는 답안지를 냈고 또 아이들이 죽었다.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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