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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우진의 햇빛] 비의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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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우진 ㅣ 이화여대 초빙교수(과학교육)

이웃 나라 비 피해가 심상치 않다. 일본 규슈에서는 하루 동안 500㎜에 이르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기차처럼 줄 이은 소나기구름이 한곳에 정체하며 강수량이 빠르게 불어난 것이다. 강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일어나 150명 넘게 사상자가 났다. 코로나19도 진정되지 않은 와중에 200만이 넘는 이재민의 대피시설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중국 남부 지방에도 지난 한달간 600㎜가 넘는 비가 집중되면서, 보험사가 집계한 피해 규모만 3조원이 넘는다. 양쯔강엔 한때 황색 홍수경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비가 온다는 것은 어디에선가 증발한 물이 옮아온다는 것이다. 대기 중 수증기의 85% 이상은 바다에서 온 것이고, 대부분은 아열대 해상에서 나온다. 수증기는 바람을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이동한다. 일부는 아시아 대륙을 향해 이동하다가 기상 조건이 맞으면 곳곳에 큰비를 쏟아낸다. 여름이 되면 햇빛으로 달궈진 아시아 대륙에 맞서 비구름 군단이 동서로 길게 전선을 형성하고, 북진을 시작한다. 일본과 중국의 호우도 계절적인 흐름에 따라 북상하던 전선대에서 일어났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장마철 비구름의 탄약 구실을 하는 수증기의 원천이다. 열대에서 상승한 공기는 북태평양고기압에서 하강하며 마른공기를 뿜어댄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끼고 장맛비가 내리는 시간에도 이곳은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을 받아 쉬지 않고 해수가 증발한다. 매년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량의 60배에 이르는 수증기가 북태평양에서 만들어진다. 일본 규슈와 중국 남부 지방의 물난리는 다른 해보다 많은 수증기가 북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비구름대로 모여들어 일어났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예년보다 강하고, 주변 해수 온도가 높은 것도 수증기 증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한달 새 중국과 일본의 호우 지역에서 내린 강수량은 다른 해 같은 기간보다 많게는 200%까지 늘어났다.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반도까지 올라온 장맛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주 부산 지역에는 중국에서부터 이어진 전선대에서 기압골이 발달하여 장맛비가 내렸는데, 6시간 동안 200㎜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에서 건너온 비구름의 특성과 일본 규슈에서 발달한 소나기구름의 특성이 한데 결합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도 변수다. 기온이 상승하면 해상에서 더 많은 수증기가 증발할 것이고, 수증기가 모이는 지역의 강수량이 증가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평가보고서에서도 아시아 지역 전체의 장마철 강수량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범위를 좁혀 강수량이 많이 증가할 곳을 콕 집어내지 못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엘니뇨가 기승을 부리던 1998년에는 송추계곡에 큰 돌덩이가 떠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 후에도 몇년에 한번씩은 큰비로 도심 저지대가 침수되거나 산사태가 나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 최근 몇년간 여름철 강수량은 10여년 전에 비해 줄어든 편인데,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기후변화 때문인지도 조사가 필요하다.

열대의 북방 한계가 확장됨에 따라 북태평양고기압도 더불어 팽창하는 추세다. 고기압 가장자리는 비구름이 지나다니는 통로 구실을 한다.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에 놓인 지역에서는 집중호우로 비 피해가 늘어나는 반면, 고기압권에 들어간 지역에서는 마른장마에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고기압이 어느 쪽으로 확장되느냐에 따라서 기후가 달라진다. 연 강수량의 60% 이상이 여름철에 몰려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저기압과 태풍의 이동 경로와 강도에 따라 수자원이 큰 폭으로 변동한다.

물난리를 겪고 있는 이웃 나라를 보면서, 햇빛으로부터 시작되는, 비의 서곡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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