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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나이` 아닌 `일한대로` 임금 받아야…노인·청년 일자리 공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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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비부머의 퇴장 ④ ◆

매일경제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매일경제 기자와 만나 베이비부머의 노동력 활용과 노후생활 안정을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저출산위에 지난 1월 부임하자마자 '저출산·고령사회 중장기 전망팀'부터 새로 꾸렸다. 2045년 대한민국이 교육, 산업, 사회, 문화 분야에서 맞이하게 될 변화를 12명의 각계 전문가에게 분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5년마다 계획을 내놓는 저출산위가 이처럼 30년을 내다보는 장기 전망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 결과는 올해 12월 발표하는 4차 저출산 기본계획 첫 장에 담기게 된다. 서 부위원장은 "올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8명으로 떨어지고, 고령화율은 15%에서 앞으로 20년간 매해 1%포인트씩 증가하게 된다"며 "1·2·3차 기본계획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인구 변화를 대한민국이 맞이한 만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는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맏이인 1955년생이 65세를 넘겨 고령자로 진입하는 해다. 이들 1955년생을 시작으로 1974년생까지 총 1700만명에 이르는 1·2차 베이비부머가 단계적으로 노인 인구로 편입된다. 서 부위원장은 "이들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55세부터 많은 사람이 실질적인 은퇴를 희망하는 74세까지의 20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우리나라 고령화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4차 기본계획에 베이비부머 대책이 담기나.

▷물론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의 고령자와는 세대 특성이 다르다. 신세대 고령자라고 할 수 있다. 1차, 2차, 3차 기본계획에서 고려하지 못한 새로운 고령사회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경험과 자산을 충분히 살려야 한다. 베이비부머는 기존 고령자보다 더 건강하고 나름 노후에 대한 준비도 많이 해왔으므로 지역사회나 기업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이들이 계속해서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나이 때문에 사회에서 배제되는 잉여세대가 아닌 지금까지 이들이 맡아왔던 주역세대로서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베이비부머 일자리 해결책은.

▷노동시장 개혁이 해법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이유는 비싼 인건비 즉 '연공급' 체계이기 때문이다.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동일직무 동일보상을 통해 제대로 실현하면 노인 인력도 비용을 절감해 오래 활용할 수 있다. 청년과의 일자리를 두고 다투는 세대갈등도 해결될 것이다. 노인이 청년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인이 직무능력이 아니라 연공에 따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요구의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주된 직장에서 그만 두는 나이는 평균 49세다. 정년연장은 공공부문과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직무급제를 도입해 나이가 아니라 직무에 따라 보상받고,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져 직무 간 자유로운 이동이 실현된다면 정년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개념이라고 본다.

―일자리는 시장과 협력이 중요한데.

▷현재 노인 일자리는 '복지'정책이지 '고용'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베이비부머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기능들을 계속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근무시간은 파트타임이더라도 내용 자체는 업무와 연속성이 필요하다. 중소기업과 노인 인력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조직생활에 익숙한 노인 인력이 일정 부분 이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 저출산위는 이 과정에서 교육 훈련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발굴하는 '브리지' 역할을 하겠다.

―저출산 고령화 어떻게 대비할까.

▷교육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가장 필요한 정책 중 하나가 평생학습이다. 기술발전에 따라 새로운 직업, 새로운 직무가 계속 생겨난다. 연령에 상관없이 평생학습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평생학습비가 전체 교육 예산 대비 1% 정도에 그친다. 유럽은 10% 가까이 된다. 출생아와 학령인구가 감소해 앞으로 대학이 정해진 학생 수를 채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대학이 평생학습의 장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청년들도 노동의 유연화로 직장은 평균 10번, 직업은 평균 3번 옮겨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새로운 교육 수요가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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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저출산 고령화에 '쇼크'가 될 수 있다는데.

▷올해 들어서 출생아 수가 전년에 비해 10% 이상 줄고 있다. 올해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30만명 아래로 떨어져 27만명 정도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취업과 결혼이 미뤄져 내년과 내후년에는 출생아 수가 더 큰 폭으로 떨어져 최악의 경우 20만명대가 위협 당할까 걱정이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저출산 고령화에도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신중년들이 노후 대비 없이 노동시장에서 조기에 밀려나면 노인빈곤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재난 사태에서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밀려나는 만큼 사회안전망 등을 더 단단히 해 악화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

―그동안 정책의 성과와 아쉬운 점은.

▷2003년부터 저출산 문제를 어젠다로 삼아 무상보육,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관련된 사업도 늘리고 예산도 늘려왔지만 출생률은 더 떨어지고 노년에 대한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 게 아쉬운 점이다. 이 정부 들어 2018년 말부터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을 '출산 장려'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바꾸었다. 아동의 출생률이나 노인의 빈곤율에 대한 구체적인 숫자 목표를 제시하고 이 숫자에 정책 성과를 맞추는 대증요법을 포기하고, 저출생이나 고빈곤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의 개선을 목표로 하는 체질요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성평등 구현'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한 사회구조 변화'를 핵심 목표로 설정한 것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도 겪어 보지 못한 극심한 저출산 고령화에 직면해 있다. 대응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저출산위가 많은 대책을 냈지만 민간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인구구조에 맞게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하지만 개인은 개인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여기에 맞추어 생활방식과 경영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저출산위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식을 공유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광범한 사회협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또 이번에 개원한 21대 국회 안에 저출산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여야 간 협의의 장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집 한 채' 달랑 있는 베이비부머들…주택연금 등으로 돈 쓰게 해줘야

주택연금 기준인 '시가 9억'
'공시가 9억'으로 현실화 시급
美·日처럼 신탁시장 활성화를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노인 인구보다 자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당수 자산은 거주 주택과 같은 부동산에 묶여 있다. 해외에서는 퇴직자 자산 중 50~60%가 금융 자산인데,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 소득이 끊기면 '하우스푸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베이비부머가 부동산 자산을 어떻게 유동화 하느냐가 노후 생활의 질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출산위는 "자산 유동화는 고령층 미시차원에서는 개인의 소득 확보 방법이 될 수 있고, 거시차원에서는 경제 및 자원 순환의 의미를 갖고 있다"며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유동화를 위한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노후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주택연금 활용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최근 주택연금 가입 대상이 65세에서 55세까지로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주택연금 가입 대상은 시가 9억원 이하 주택으로 여전히 제한돼 있다. 저출산위 측은 "현재 주택가격 수준을 고려할 때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 중에도 현금 유동성 부족에 처한 고령층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법 개정을 통해 주택가격 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택연금에 하우스셰어링을 연계하는 방안도 나왔다. 하우스셰어링은 혼자 사는 노인이 대학생과 집을 공유해 부가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도움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원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안정적인 노후자금 마련과 치매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위해 치매보험 상품을 주택연금과 연계하는 상품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저금리 시대에 신탁이 자산운용 주요 수단으로 부상한 만큼 비금전신탁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신탁시장은 국내총생산(GDP)의 45%로 선진국 대비 성장이 더딘 상황이다. 우리보다 앞서 단카이 세대의 은퇴를 겪은 일본은 신탁시장 규모가 GDP의 174%에 이르고, 미국은 94%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신탁재산 종류는 7가지로 한정(열거주의)돼 있다. △금전 △증권 △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 권리 △무체재산권(지식재산권 등) 7가지만 다룰 수 있다 보니 신탁업계에서는 상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포괄주의로 전환해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고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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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탁 허용을 통한 종합재산신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신탁회사가 모든 신탁재산에 대한 운용관리 전문성을 갖춘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재산별 전문성이 있는 신탁업자에게 재신탁을 맡겨 최선의 고객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금융회사가 부동산, 금전, 유가증권 등을 일괄 수탁 받은 후 재신탁을 통해 부동산, 금전, 유언대용 등을 각각 부동산신탁, 금전신탁, 유언대용전문가 등 전문신탁회사에 다시 위탁 관리해 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택연금·농지연금과 종합재산신탁의 결합을 허용할 필요도 있다. 노인들이 주택은 주택연금으로, 농지는 농지연금으로 하면서도 종합재산신탁을 통해 통합 관리하고 증여나 상속 등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획취재팀 = 팀장 이지용 / 김태준 기자 / 문재용 기자 / 김연주 기자 / 양연호 기자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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